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 한 그루 심은 적 없으니 죽어 새가 되어도 나뭇가지에 앉아 쉴 수 없으리
나 이 세상에 태어나 지금까지 나무 물 한 번 준 적 없으니 죽어 흙이 되어도 나무 뿌리에 가 닿아 잠들지 못하리
나 어쩌면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하고 늙은 죄가 너무 커 죽어도 죽지 못하리
산수유 붉은 열매 하나 먹어보지 못하고 나뭇가지에 걸린 초승달에 앉아보지 못하고 발 없는 새가 되어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앉지 못하리
정호승 - 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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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비가 제법 내리더니 온 산이 초록이 올라옵니다. 자연의 신비는 참으로 대단합니다. 햇살에, 바람에, 빗줄기에, 세상은 그리 숨 쉬고 깨어나고 자라납니다.
제법 내린 봄비에 공기도 맑아지고 하늘도 푸릅니다. 곳곳마다 물오른 연초록은 마음을 한껏 편안하게 해 줍니다.
식목일이 오늘, 그 초록에 나무 한 그루 더 하진 못해도, 그 초록들의 건강함을 응원해 봅니다. 그 마음으로 정호승 님의 참회 한 구절을 그려봅니다. 태어나 나무 한 그루 심지 못하고, 태어나 나무에 물 한줄기 주지 못했으니 나 죽어 나무에도 쉬지 못하고 나무뿌리에 가 닿지 못할 거라 참회합니다. 산수유 하나 따 먹지 못할 발 없는 새가 되지 않을까 참회한다 합니다.
어찌 나무 한 그루뿐일까요. 세상에 나와 긴 세월 살아가며 과연 나는 세상의 평화를 위해 어떤 발자국 한 남겨 놓았을까요. 세상에 나와 과연 나는 세상의 정의를 위해 물 한줄기 보태었을까요. 긴 세월 살아온 동안, 세상에 키워진 산수유 한 알, 나뭇가지 하나에, 거리낌 없이 앉아 쉴 보탬은 되었을까요.
초록이 싱그러운 식목일 아침에, 세상에 보탬이 될 작은 손짓 하나, 작은 발걸음 하나 묵상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