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를 오고 나서 정리할 일이 잔뜩입니다. 주변에선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하나씩 하라 하는데, 눈에 보이는걸 그냥 지나 칠순 없다 보니 저녁때만 되면 허리가 뻐근해집니다.
아침 일찍 한 구석 정리를 하고 나니 날이 잔뜩 흐립니다. 비도 올 것 같고 해서 음악을 듣고 기분전환을 할까 했습니다. 마침 통신선도 이전 설치가 완료되었고 그중엔 그림처럼 생긴 인공지능 셋탑박스가 있습니다. 뭐 대부분 작동이야 리모컨이 편하지만 가끔 심심풀이로 이 녀석과 말을 주고받습니다.
오늘도 생각난 김에 '지니 야 tv 켜 - (절대 ppl 아닙니다^^_ 했더니 Tv를 켭니다. 자주 듣는 음악채널이 있어서 '재즈 음악' 했더니 이 녀석 대답이 가관입니다. '재즈음악 틀어줘 라고 하세요'라고 합니다. 명령조로 하지 말고 부탁을 하라는 거지요. 세월이 흐르며 여기저기서 자신들의 권리를 찾기 위한 권리 주장들이 많이 나오더니만, 이사 오는 동안 AI들의 로봇권이 강화되었나 봅니다. '너 뭐라고 했어?'라고 물어보니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네요'라 대답합니다. 이 녀석이 교묘히 말을 돌리며 말을 안 듣습니다. 문득 몇 년 전 영화에서 나오던 AI들의 반란이나, 터미네이터 같은 장면이 연상됩니다. 며칠 전 자동차도 뜬금없이 시동이 안 걸려 아침 출발 약속을 당황하게 하더니 기계들이 요즘 시비를 거네요
이대로 두어서는 안 되겠다 싶어 이 녀석을 붙잡고 말싸움을 하는데, 뒤에서 쯧쯧하며 끌탕을 하는 와이프의 인기척이 들립니다.
머쓱해진 발걸음을 돌리며 훗날을 기다려봅니다. 다음번엔 저 녀석 버르장머리를 고쳐놔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