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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n 24. 2021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몫'이라는 글자가 있습니다. 무심코 쓰고, 흔하게 써오던 단어인데 막상 붓으로 옮겨 놓고 보니 살짝 낯설어집니다.

사전을 찾아보니 '여럿으로 나누어 가지는 한 부분'이라 되어 있습니다. 그 밑으론 '수학이나 산수에서의 나눗셈의 몫' 등등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통상, 내 몫은 얼마나 될까, 내 몫은 제대로 챙겼나 할 때 몫이란 단어를 많이 쓰곤 해서 산수적인 계산이 필요해서 인가 봅니다.


하지만 제게 '몫'이란 단어는 내게 나뉘어진 부분의 의미보다는 내게 주어진 책임이나 의무의 의미가 더 먼저 다가옵니다.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누구나 살아가며 자신이 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해야 할 몫,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져야 할 몫, 스스로의 마음에서 감당해야 할 몫처럼 관계 속에서 나의 몫으로 존재를 입증하곤 합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세월이 흘러가면서, 내가 해야 할 몫이 점점 없어진다고 느낄 때 허탈감을 느끼는 건 그만큼 나의 존재가치가 흐릿해짐을 느끼기 때문일 겁니다.

예전의 시어머니들이 '곳간 열쇠'를 내 몫으로 오래도록 쥐고 있으려 한 이유가 그런 걸까요.


다리를 쓰지 못하니 밖에서의 일은 엄두도 내지 못하고, 집안에서의 활동조차 제약이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내가 하던 나의 몫 부분이 식구 중 누군가에게 얹어집니다.

사소하게 빗자루 들고 청소하던 일이며, 재활용 쓰레기 치우던 일이며, 고장 난 곳을 고치던 하찮은 부분까지 식구들의 몫이 됩니다.

미미하나마 거들어주던 바깥일도 손을 대지 못하니 온전히 식구들의 몫이 늘어납니다.


마음은 굴뚝같지만 도와주지 못하니 미안한 마음입니다. 더해진 일을 이렇다 할 내색 없이 해주는 식구들의 마음에 고마움에 미안함이 더해집니다. 내 몫의 득을 나누어 주어도 시원찮을 판에 내 몫의 일만 넘겨줍니다.

미안하고 고마울 뿐입니다.


식구들의 일만 그럴까요.

어쩌면 그렇게, 이 세상 어느 하늘 아래에서는 누군가의 몫을 더 해주는 이들도 있을 겁니다.

누군가의 몫을 빼앗아 먹는 파렴치한도 있겠지만,

무심코 내가 흘려버린 나의 몫의 책임을, 미루어진 나의 몫의 일을 어느 누군가는 또 그렇게 묵묵히 대신해주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세상에 감사합니다.

가족에 감사합니다.

당신께 감사합니다.

그렇게 묵묵히 건네 준 당신의 손길에 감사합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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