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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Aug 19. 2021

선인장의 고백 - 이해인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하나뿐인 사랑조차

고단하고

두려울 때가 있어요.

 

황홀한 꽃 한 송이

더디 피워도 좋으니

조금 더 서늘한 곳으로

데려가 주어요

 

목마르지 않을

지혜의 샘 하나

가슴에 지니고

 

이젠 그냥

그대 곁에서

조금 더 편히 쉬고 싶음을

용서해주어요.


선인장의 고백 - 이해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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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들의 생명력은 참으로 놀랍습니다.

시들어 죽은듯하던 나무가 어느새 초록을 한가득 달고 있고, 겨우내 보이지 않던 싹은 봄이 되면 여지없이 고개를 내밉니다.


물을 자주 주지 말라하니 물 줄 때를 놓쳐서 종종 방치되어서 결국은 말라버리는 일이 자주 생기는 선인장도 그렇습니다.

물 주는 일을 신경 쓰기가 영 쉽지 않습니다.

고맙게도 강인한 선인장의 생명력은 종종 나의 깜빡이는 건망증을 용서해줍니다.

미안함에 적셔주는 한 모금 물로도, 예쁜 꽃 한 송이를 보여주기도 합니다.


그런 선인장도 고단할 때가 있다 합니다

서늘한 그늘이 필요하기도 하답니다.

때론 목마르지 않을 지혜의 샘을 가지고

그렇게 편히 쉬고 싶기도 하다 하네요.


뜨거운 볕도 한풀 꺾이는 늦여름입니다.

덥혀진 공기도 서늘한 바람에 식듯이,

당신을 그리는 뜨거운 그리움도

잠시 식혀 보아야 할까 봅니다.

다가올 가을을

차가운 겨울을

견디고 넘긴 또 새 봄에

당신 닮은 그리움을 꽃피우려면 말이죠.


세상 모든 지친 마음들에 시원한 그늘 한 뼘 드리워지는 하루이길 기원합니다

-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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