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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Dec 14. 2022

붓끝을 다듬는 마음으로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요즘 들어 부쩍 쓰고 있는 붓의 끝이 갈라집니다. 그러다 보니 쓰이는 글씨도 맘에 안 들게 나옵니다.

붓이 손에 익어 자주 이 붓으로만 쓰기도 하고 오래 쓰기도 했습니다.

아무래도 새 붓으로 바꿔야겠어서 새 붓을 꺼내 놓습니다.


새 붓을 꺼내 잘 정리해 놓긴 했지만,

쓰던 붓을 선뜻 버리지 못합니다.

아무래도 정이 들어서일까요.

괜스레 갈라진 붓을 물에 풀고 잘 닦아내어 봅니다.

채 못다 풀어낸 세월의 응어리처럼 붓 깊숙이 스몄던 먹이 풀려나오고, 세월의 연륜이 스민 잿빛의 붓털들이 보입니다.


붓을 잘 말려 붓끝을 다듬어 봅니다.

세월에 닳은 붓끝이야 어쩔 수 없지만 그나마 먹에 찌든 붓이 나름대로 정리가 됩니다.


잘 털어낸 붓에 먹을 묻혀 화선지에 올려봅니다.

익숙한 붓 길이 그어집니다.

갈라지던 붓끝도 조금은 모아진듯합니다. 머뭇거리다 붓을 다시 붓걸이에 잘 걸어 놓습니다.

한동안은 다시 이 붓으로 쓸듯합니다.


세월에 붓 끝만 갈라졌을까요.

세월에 먹물만 붓에 굳었을까요.

오래된 붓을 다듬어보며,

갈라진 내 마음도 들여다봅니다.

굳은 응어리도 씻어내 봅니다.

붓을 정리하는 마음으로, 마음결도 한번 매만져보는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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