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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13. 2018

미안하다 - 정호승

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묻혀 캘리한조각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길이 있었다
다시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었다
산이 끝나는 곳에 네가 있었다
무릎과 무릎 사이에 얼굴을 묻고 울고 있었다
미안하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정호승 – 미안하다
-------------+-+---
 
흔히들 삶을 긴 여정에 비유하곤 합니다
그것도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하는,
우리의 숙명 같은 긴 여정입니다
어쩌면 우리의 삶은 물리적으로나 감성적으로나
매양 그렇게 발걸음을 옮기며 걸어가는걸지도요.
그러기에 그 여정 중에 삶을 보고, 깨닫게 되고, 그래서 또 우리는 새로운 길을 떠나게 되는지도요.

유명한 순례길인 산티아고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향해 걸어가는 이유는,
종교적인 이유를 떠나 사람으로서의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숙명 같은 여정에서 나 자신을 찾아내는 그런 귀한 경험을 하기 때문이겠지요
철저히 나 혼자만의 걸음에서 말이죠.

그런 긴 여정이 힘들고 외롭지 만은 않은 이유는
어쩌면 그 길에서 만나고 이야기하고 헤어지는 많은 다른 이들이기 때문일겁니다
저마다의 사연을 가지고,
저마다의 삶의 숙제를 풀기위해
그들도 길을 떠나고 그 길의 우연한 접점에서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고
또 그렇게 또 한 꺼풀을 채우고 버리고 익어가는것이 삶이겠지요

정호승님의 시 ‘미안하다’를 읽으면 우리의 그런 인생이 생각납니다
길이 끝나는 곳에 산이 있고,
그 산을 넘으면 또 길이 나타나고, 그 길과 산을 넘다 보니
그 길 중에 당신을 봅니다.
스스로의 삶의 무게를 지니고,
스스로의 삶의 십자가를 지고,
여정에서 쉬고있을, 때로는 힘들어 지쳐 있을
너를, 나를, 당신을 만납니다
그리고
그 무거운 삶의 발걸음에,
수렁 같은 사랑으로
원죄의 사과 같은 달콤함으로
눈물의 무게를 얹게 되어
미안하다 합니다
너를 사랑해서 미안하다 합니다

사랑의 역설이겠지요
연민의 역설이겠지요
긴 여정의 끝이 다름에
그 깊은 사랑을 다 하지 못함에
그리 미안함이 또 우리의 삶이겠지요

같이 걷지만 발걸음은 나 혼자의 힘으로 내딛음이 삶입니다
긴 순례의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서 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의 긴 순례의 여정에
외로운 영혼들의 고단한 여정에
당신의 고귀하고 아름다운 여정에
함께하는 모든이들에 감사하며
길을 찾는 지혜와 나아가는 용기와 안식 같은 평화가 함께 하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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