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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Jul 24. 2024

세월 한 줌, 나이테 한 줄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결혼식 참석차 서울에 다녀왔습니다

식장에서 오랜만에 보는 동창 동문들도 만났습니다.

다들 어깨와 머리에 세월 한가득씩 얹었지만, 조금씩 보이는 말투에 수십 년 전의 모습들이 그대로인 것도 재미있습니다.

'넌 요즘 뭐하니? 명함 한 장 줘' 하는 말에 살짝 머뭇거립니다. '난 카페 하지, 명함은 없고' 라 대답하면서 입이 머뭇거립니다. 뭔가 내 삶에 대해 더 설명을 해야 하나 싶었습니다.


모임에서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봅니다.

난 무엇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내 무엇을 자랑하고 싶었을까.

내 삶의 나이테보다, 내세워야 할 포장이 아직도 더 필요한 걸까 하고 말이지요.


김민기 님의 영면 소식을 들으며 그의 삶을 돌아봅니다. 충분히 큰 역할을 하기에 앞으로 나설 수 있는 입장임에도, 스스로 '뒷것'이라 칭하며 철저히 낮은 곳에, 어두운 곳에, 힘든 곳에 먼저 자리합니다.

내 것일 수 있는 자리를 후배들에게 내어줍니다.

그렇습니다.

내세우지 않아도, 자랑하지 않아도, 내겐 나의 나이테가 있는 것인데 말입니다.

앞에 나서지 않아도, 자랑하지 않아도, 나 스스로에게 자랑스러운 나만의 나이테가 있는 건데 말입니다.

그 나이테야말로 허세를 다 걷어낸 나만의 명함일텐데 말입니다


허영의 잎을 걷어내고, 교만의 가지를 치워내고,

아직도 더 무거워져야 할, 아직도 더 깊어져야 할,

아직도 한참을 더 두터워져야 할, 내 명함 속의 나이테를 돌아보는 오늘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를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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