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 - 허영자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by 사노라면

이 맑은 가을 햇살 속에선

누구도 어쩔 수 없다

그냥 나이 먹고 철이 들 수밖에는


젊은 날

떫고 비리던 내 피도

저 붉은 단감으로 익을 수밖에는


허영자 -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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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그동안 밀린 가을 시를 쓰기 좋은 계절이 되었습니다.

이제서야 가을 시가 가을처럼 읽히는 기온이 되었습니다.

아직도 한낮의 기온은 뜨거운 끝자락을 출렁이지만, 그래도 이젠 가을입니다.


단감 빨갛게 익어가는 가을입니다


시인의 말처럼 ‘젊은 한때 떫고 비리던 내 피도 붉은 단감으로 익어' 갑니다.

계절을 따라 감이 익듯, 그렇게 우리의 피도 붉어집니다.


뜨거운 피가 전부라 생각하던 떫고 비린 시절이 있었습니다.

그 떫음에 세월이 배고, 그 비림에 시간을 적시며, 지난한 세월을 보내고 이제 내 감을 바라봅니다.


내 감엔 적당한 단물이 배어있을지요.

내 감엔 적당한 유연함이 스며 있을지요.

내 감엔 적당한 아량이 남아있을지요.

내 감엔

겨울날 가지 끝에 남아 허기진 새의 한 끼 밥이라도 될 수 있는 그런 여유가 담겨있을지요.


가을의 시작을 재촉하는 오후,

세상 모든 이들의 원숙하게 영글은 단감 같은 시간을 응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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