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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노라면 Nov 25. 2024

공부 -김사인

사노라면의 붓 끝에 시를 묻혀 캘리 한 조각

​'다 공부지요'

라고 말하고 나면

참 좋습니다.

어머님 떠나시는 일

남아 배웅하는 일

'우리 어매 마지막 큰 공부 하고 계십니다.'

말하고 나면 나는

앉은뱅이책상 앞에 무릎 꿇은 착한 소년입니다.


​어디선가 크고 두터운 손이 와서

애쓴다고 머리 쓰다듬어주실 것 같습니다.

눈만 내리깐 채

숫기 없는 나는

아무 말 못 하겠지만요 만

속으로는 고맙고도 서러워

눈물 핑 돌겠지요만.


​날이 저무는 일

비 오시는 일

바람 부는 일

갈잎 지고 새움 돋듯

누군가 가고 또 누군가 오는 일

때때로 그 곁에 골똘히 지켜섰기도 하는 일


​'다 공부지요' 말하고 나면 좀 견딜 만해집니다.


​김사인 - 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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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모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있습니다.

식구를 요양병원에 두고 있던 경험이 있는 분들은 아시겠지만, 그곳에서의 매일은, 불가역적인 노화의 진행을 마주하며 반복되는 희망과 절망의 씨줄 날줄로 하루하루 수의로 쓸 옷감을 짓는 일 같습니다.

그러기에 병원을 다녀오는 날은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그러던 중 이 시를 만납니다.

이 시를 소개한 작가도 어머니를 여의고 난 상실감을 이 시에서 위안을 받았다 합니다.


그러게요.

그 모든 게 공부라 하면,

병원에서 누워계시는 노모의 하루도 인생의 마무리를 공부하는 일이라면,

열린 열매가 나뭇가지에서 내려오는 법을 공부하는 중이라 하면,

오고 가는 법을 공부하는 중이라 생각하면, 그나마 마음이 조금은 나아집니다.

죄책감과 무력감과 안타까움에서 출렁이는 내 마음에 가만히 손을 넣어 진정시켜주듯, 그렇게 조금은 마음이 조용해집니다. 시인의 말처럼 '좀 견딜 만해'집니다.


이번 면회엔, 우리 엄니 공부하느라 수고하는 손이라도 꼭 쥐어보고 와야 하겠습니다.

이 모든 시간, 다 공부입니다.

오는 이도 가는 이도 다 공부입니다.

남은 이도 떠나는 이도

다 공부입니다.


세상 모든 이들의 평화와 안식을 기원합니다 -사노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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