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노라면의 붓끝에 시를 묻혀 캘리한조각
선운사에서 / 최영미
꽃이
피는 건 힘들어도
지는 건 잠깐이더군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님 한 번 생각할 틈 없이
아주 잠깐이더군
그대가 처음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잊는 것 또한 그렇게
순간이면 좋겠네
멀리서 웃는 그대여
산 넘어 가는 그대여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영영 한참이더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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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엔,
봄이 와도 춥기만 하니 ‘춘래불사춘’이라 하였는데, 요즘은 봄이 와도 하늘이 맑지 않으니 이 또한 ‘춘래불사춘’입니다
그래도 그 먼지 사이로도,
그 답답한 사이로도,
어느새 잎은 피고 꽃은 열립니다.
힘들게 힘들게 봄 날의 꽃은 핍니다
겨울동안의 상처에서,
그 상처를 열고 비집고 잎은 피고 꽃은 핍니다
그리 피어난 봄의 꽃도 떨어짐은 잠깐이라 하지요
님 한번 생각할 틈없이
그렇게 꽃이 지는 건 잠깐이라 하네요
하지만,
사랑은 가도 과거는 남는것처럼
그 꽃은 그리 쉽게 피고 지어도
매년 오는 봄 꽃같은 그리움은
짙은 흔적처럼 오래 남는가봅니다
매양 왔다가는 계절이지만,
그 봄을 잊는 건,
그 꽃을 잊는 건
그대를 잊는 건
한참이라 합니다
영영 한참이라 합니다.
잔뜩 흐린 하늘이 마음마저 답답하게 하는 날이지만,
그래도 봄입니다
지금의 이 봄날의 평화로운 기억만이,
차곡차곡 여러분의 그리움안에 모여지길 기원합니다
세상 모든이들의 평화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