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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계절산타 Mar 19. 2021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2009)

사랑은 상상력이야

나는 여백이 많은 소설을 좋아한다. 내가 드라마를 잘 안보는 이유이기도 한다.(요즘 멍때리며 드라마 보기에 살짝 빠져있긴 하다) 독자인 내가 채워나갈 공간이 존재해야 읽는 재미가 있다. 디테일한 묘사와 촘촘한 플롯, 완전무결한 구성은 소설의 읽는 재미를 반감 시킨다. 그런데 사실 놀랍게도 여백이 없는 소설은 없다. 여백의 크기가 서로 좀 다를 뿐이다.  


소설가 박민규를 알게 된 것은 '삼미수퍼스타스의 마지막 팬클럽'(박민규, 2003)를 통해서다. 책을 손에 잡고 거짓말 조금 보태, 한번도 책에 손을 떼지 않고 다 읽은 소설이다. 한국 프로야구의 시작을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참 많이도 추천했던 소설이다. 그 이후 나는 박민규의 소설을 도장깨기 하듯 하나씩 읽게 되었다. 표절 논란을 안타깝게 지켜봤던 소설이기도 하다,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박민규, 2009, 예담)는 여백이 풍부한 소설이다. 못 생긴 여자와 그를 사랑하는 남자의 단순하고 흔한(?) 사랑이야기지만 많은 여백을 두었다. 이 소설은 단순하고, 새로울 것이 없는 아니 어찌보면 말도 안되는 질문에서 시작된다. "그래도 절... 사랑해 줄 건가요?..... 아주 못생긴 여자라도"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중에서

커피믹스 속의 커피 알갱이 수만큼이나 사랑하는 말을 쏟아 붓고 있던 작가의 신혼시절에 아내에게 들은 질문이 소설의 시작이다. 외모 마저도 스펙이 되어 가는 세상에 대한 작가의 반항이라고 읽어도 좋을 지 모르겠다. 나는 사랑이 무엇인지 찾아가는 성장의 여정으로 읽었다. 죽을 때까지 아마도 사랑을 완전히 알기 어려울지 모르겠지만...


난 사랑를 정의한 것중 알랭 바디우가 이야기한 '사랑은 둘만의 경험'라는 말을 좋아한다. 그 어떤 누구도, 상황도 개입되지 않은 둘만의 것! 그런 의미에서 한국 사회의 결혼은 사랑을 실현하기 참 어려운 구조인 것 같다. 한국의 결혼은 둘이 하는 것이 아니라 가족이 하는 것이니, 결혼하는 순간 둘만의 경험은 사라지는 환경이다.


소설의 내용중 난 '사랑은 상상력'이라는 부분이 참 좋다. 사랑은 시시한 그 인간을, 곧 시시해질 한 인간을 상상하는 일이라는 것.


못 생긴 여자와 그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사랑은 어떻게 될까? 이 소설에서는 특이하게도 소설의 끝부분에 라이터스 컷(Writer's cut)이 있다. 영화로 보면 디렉터스 컷 같은 것인데, 다양한 결론이 가능한 여백의 장치이다. 꼭 읽어 보시길! 식스센스같은 반전이 기다릴지도!!



소설의 표지로 쓰인 그림은 화가 벨라스케스의 '시녀들' 이다. 왕궁화가였던 자신도 그림에 등장한다. 이 그림은 주인공의 시점이 어딘지 여러 해석이 분분한 작품이다. 여러분은 누가 보이는가? 소설의 제목인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는 벨라스케스의 그림에 매료됐던 작곡가 모리스 라벨의 무곡(舞曲) 제목이다. 작곡가 자신도 아주 키가 작았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음악은 소설의 주인공인 못생긴 여자가 남자에게 선물한 음악이기도 하고, 둘이 마지막 만난 날 끊임없이 들었던 곡이기도 하다. 그림도 보고, 음악도 들으면서 소설이 남겨놓은 여백을 채워가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세상을 지배하는 여러 가치를 무심하게 무너뜨릴 무기가 '사랑'이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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