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최고 기온이 32도를 웃돌았다. 기어이 여름이 왔다. 6년 전 이맘때 나와 함께 홍콩 여행을 했던 절친들은 앞으로 홍콩으로는 절대 여행 갈 일 없다고 선언했을 만큼 홍콩의 여름은 습하고 덥다. 이제 나는 이런 더위가 낯설진 않지만, 그래도 여전히 힘들기는 하다.
이런 더위 속에서도 아이들은 땀을 뻘뻘 흘리며 잘 논다. 며칠 전 땀에 젖은 아이들이 바글바글한 놀이터의 한 구석에서 날개가 꺾인 채 풀숲에 누워 숨을 허덕이는 참새 한 마리를 만났다. 폭염 속 그 작은 숨소리를, 깜빡거리는 작은 눈을 차마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서 아이의 물병에 남아 있던 물을 조금 나누어 줬다. 과연 도움이 될까, 반신반의하며 몇 방울 똑똑 떨어뜨려줬더니 금세 날개를 움직인다. 옆에 있던 엄마들도 합세해 더 많은 물을 부어주니 몇 번의 몸부림 끝에 나무 위로 푸드덕 날아간다. 모여있던 아이들이 모두 와 하며 기쁨의 함성을 지른다. 그리고 나도 오랜만에 기쁘다, 참새가 살아나서 너무 기쁘다. 기쁨이라는 감정이 느껴진다.
"엄마, 엄마 참새가 살아났어요."
"그래 솔이가 물을 나눠줘서 참새가 기운을 차렸어. 솔이 정말 잘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 으쓱해진 나는 갑자기 교육적인 엄마로 빙의되어 아이에게 주저리주저리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솔아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생명은 정말 소중한 거야. 작은 생명이라도 위험에 처했을 땐 도와줘야 해." 사실 나 자신에게 해줘야 하는 말인데 말이다.
일상을 살아가며 얼마나 많은 순간 나는 누군가의 애타는 눈빛을 외면하며 때로는 못 보고 살아왔을까
자기 연민에 빠져서 나만 바라보고 사느라 바빴던 내 모습을 반성하게 된다. 누군가 한 사람 용기 내서 다가가면 다른 한 사람이 함께 하고 그렇게 모이고 모인 손길이 위험에 빠진 누군가를 도울 수 있고, 죽어가는 생명도 살릴 수 있는데... 용기 내는 것은 고사하고 나 아닌 다른 것에는 어떤 관심도 없었으니, 반성해야 한다.
코로나 이후 불안과 공포라는 감정에 휩싸여 삶의 중요한 가치들을 많이 잊고 지내고 있었던 것 같다.
세상에 걱정할 일들은 어찌나 많은지, 이 걱정이 끝나면 저 걱정이 시작되고, 불안은 끊임없이 우리의 삶에 침투한다. 걱정과 불안의 감정에 지배되어 살다 보니 기쁨, 즐거움과 같은 좋은 감정들을 느끼고 산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작은 참새에게 물을 주었던 행위가, 어쩌면 나 자신에게 한 일이 아니었나 싶다.
그 물을 내가 마시고 ‘아 삶이 이런 거였지, 두려움과 걱정으로 점철되는 게 아니었어. 삶엔 늘 기쁨과 즐거움 그리고 감사함이 있었어!’ 기억해 내는 것. 결국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돕는다는 것은, 나 자신을 살리는 일이라는 사실을 일상의 작은 일을 통해 다시 깨닫는다.
올여름은 기쁨의 감정을 풍성히 누리고, 또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그런 뜨거운 계절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