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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호 Feb 11. 2022

친구

첫째 유정이는 1월생임에도 불구하고 4살이 되었을 때에 어린이 집에 보냈다. 첫째여서 그랬는지 애지중지하게 키웠다. 맞벌이여서 아이를 보육시설에 보내야 부모인 우리 부부도 조금은 편했을 법도 한데 말이다. 아무튼 우리 부부에게는 소중한 첫째였다.

  

어린이 집 적응 기간은 3주였다. 오전에 시간을 비울 수 있었던 직장 덕분에 내가 적응 기간에 함께했다. 작은 교실에 부모님과 아이들이 같이 있었다. 어수선했지만,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어린이 집이란 곳에 처음으로 갔던 내가 느꼈던 생각은 ‘선생님 정말 힘들겠다’는 점이었다. 열명이 넘는 아이들을 선생님 혼자 맡아야 한다는 것을 보면서 선생님들의 위대함을 느꼈다. 딸래미 한명 보는 것만으로도 나는 벅찼었기 때문이었다.

  

두 살부터 어린이 집에 다녔던 아이들도 있었고, 오늘처럼 처음으로 이곳 어린이 집에 온 아이들도 있었다. 이미 다니고 있었던 아이들은 부모님이 오지 않으셨다. 이미 적응이 된 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유난히 눈에 들어오는 아이가 있었다. 선생님을 찾지도 않았고, 혼자서 가위질도 하고, 풀도 붙이면서 차분하게 잘 노는 아이였다. 또래의 다른 아이들과는 사뭇 달랐다. 어떤 아이는 선생님에게 책을 읽어달라는 아이도 있었고, 어떤 아이는 이것저것 해달라는 아이도 있었는데 그 아이는 유독 달랐다.

  

1주일 동안의 적응기간에는 10시에 등원해서 11시 30분에 돌아오는 스케줄이었다. 그 시간동안 그 아이가 유난히 내 눈에 들어왔고, 나도 모르게 유정이가 그 아이와 친해졌으면 하는 바램이 들었다. 저 아이와 함께하면 우리 유정이도 비슷한 성격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사람을 좋고 나쁨으로 구분할 수 없지만, 사람 마음이 얄팍해서 이왕이면 좋게 보이는 친구와 가깝게 지내는 것이 좋다는 생각이 내 마음 안에 있었다.

  

한 주가 끝나고 하원을 하면서 잠깐 선생님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 어떠셨어요?

  - 선생님이 정말 힘들어보였어요. 저는 아이 하나 키우는 것도 허덕였거든요. 10명이 넘는 저 아이들과 함께 하는 선생님이 대단하십니다.

   - 아닙니다.

   - 선생님. 그런데 저 아이는 누구에요? 제가 일주일 동안 봤는데 저 아이는 정말 보채지도 않고 혼자서도 잘 노네요. 소위 말하는 ‘엘리트’가 있다면 저런 아이를 두고 하는 말 일거에요.     

  

그렇게 1주일의 적응기간을 보냈다. 유정이는 적응을 잘했고, 다음 주 부터는 아빠인 내가 함께하지 않아도 되겠다고 선생님은 말씀해주셨다. 물론 적응이 완벽하게 되어 있지는 않았기 때문에 전화가 오면 언제든 어린이 집으로 와 달라는 선생님의 부탁도 있었다. 

  

어린이 집을 보내고 자유같은 시간이 나에게 찾아왔다. 어떤 언어로도 설명할 수 없는 ‘자유와 편안함’은 그렇게 나에게 찾아왔고, 그 수고를 어린이 집 선생님이 대신해주는 것처럼 나는 느꼈다. 그렇게 유정이는 어린이 집에 익숙해졌다.


  

날씨가 좋은 날에는 하원을 하면서 집으로 바로 가는 경우는 없었다. 집으로 가는 길에 놀이터에서 어김없이 놀았다. 시간을 두고 먼저 하원한 아이들과 나중에 하원한 아이들은 만나서 함께 놀았다. 다 같은 단지에 살고 있는 이웃집 친구들이다.

  

어린이 집 적응 기간을 함께 보내면서 내가 생각했던 ‘엘리트’ 아이와 유정이는 재미있게 놀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니 참 좋았다. 좋은 친구를 만나는 것은 또 다른 선생님을 만나는 것과 같다. 인간은 사회적인 동물이라서 친구와 함께 하면서 자신도 모르게 배울 수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아이를 통해 부모님을 알게 되었다. 정말로 신기하게도 그 아이의 모습은 결국 부모님의 모습을 참 많이 닮아있었다는 점이다. 차분한 아이의 모습과 부모님의 모습은 너무나 일치했었다. 아이를 통해서 배울게 많은 학부모님을 알게 된 것이다. 아이들만큼이나 아빠인 나도 배워야 한다. 여전히 미숙한 아이들처럼 아빠인 나도 미숙함이 가득한 존재라는 것을 느꼈다. 아이 뿐만 아니라 나 역시 주변 사람들을 통해서 배움으로 가득해져야 했음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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