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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호 Feb 11. 2022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어린이 집에 다닐 때처럼, 유치원에서의 적응 기간과 공개 수업은 내가 참여했다. 뻘쭘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나 홀로 아빠였다. 출퇴근 시간에 문제만 없다면 내가 등하원을 했다. 자연스럽게 놀이터에서 아이와 놀면서 또래 친구 엄마들과도 친해졌다. 가끔씩 우리 집에서 아이들이 놀다 가기도 했다. 그때마다 간식과 저녁식사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기도 했다. 그러면서 더욱 친해지게 되었다. 대체로 어린이 집 친구들은 유치원에서도 만난다. 이사해서 동네를 떠나기 전에는 늘 만나게 되는 이웃 사촌이 되었다. 

  

그날은 유치원 공개 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공개 수업을 마치고 부모님들끼리 둘러앉아서 선생님의 전달 사항을 들었다. 그리고 운영 위원을 뽑아야 한다고 하셨다. 갑자기 엄마들의 얼굴이 땅바닥으로 향하고 있었다. 분위기는 갑자기 조용해졌고, 아무 말이 없었다. 선생님은 누구든지 손만 들면 뽑아줄 기세였다. 몇 분의 적막이 흐르고, 가은이 엄마가 손을 들어 말씀하셨다. “유정이 아빠를 추천합니다.”

 

‘(허걱...) 아니, 왜? 나냐고?’ 그 자리에 묻고 따질 수도 없었다.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선생님은 “좋네요”라고 하셨다. 우레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나는 울며 겨자먹기로 운영 위원이 되었다. 내 인생에 반장 같은 것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 같은 일인가!

  

하기 싫은 일도 해야 할 때가 있다. 초등학교 병설 유치원의 6살 운영 위원은 내가 하게 되었다. 솔직히 어려운 일은 없다. 분기마다 학교 운영 회의에 참석하면 되는 일이었다. 그렇게 학교 운영 위원회에 들어가서 회의를 했다.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세상은 배울 것이 천지에 깔려있다. 학교 운영 위원회도 그랬다. 첫째는 학교 운영에 필요한 계획과 그것에 따른 예산을 통해서 학교가 어떻게 운영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둘째는 학교 선생님들을 많이 알게 되었다. 비슷한 또래의 학부모이자 선생님이었던 분도 알게 되었고, 동시에 그분을 아이들 학원에서 만나기도 했다. 정말 알 수 없는 인연이었다. 셋째, 가끔씩 교장 선생님께서 맛있는 점심을 사주기도 했다는 것이었다. 그때가 가장 즐거웠다. 마지막으로 각 학년에서 뽑힌 운영 위원님을 보면서 그들이 가지고 있는 학부모로서의 고민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그것이 가장 나에게 도움이 되었다.

  

그러니까 각 학년마다 한명씩 선택된 운영 위원이자 학부모님들과 회의를 하기 전에 참 많은 이야기를 했었다. 그 이야기들은 대체로 뻔하다. 어떤 학원이 좋냐? 아이들 어떻게 키우냐? 학교에서는 이런 것들 해주면 어떻겠냐? 모든 이야기들이 자녀의 교육과 진로에 대한 이야기들이었다.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저분들의 고민이 곧 나의 고민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아직 나의 아이는 유치원의 아이지만, 곧 초등학교를 입학하면서 보육보다는 교육에 더 많은 신경을 써야할 것이 너무나 뻔한 결과였기 때문이다. 나라면 그런 고민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자녀와 관련된 고민들은 생각처럼 쉽게 해결하지 못한다. 아이의 성격, 학습태도, 성적, 친구 관계 같은 것들은 한번 정해지면 쉽게 바뀌지 못한다. 무엇보다 공교육이 무너진 현실에서 아이들 교육에 대한 고민은 결국 부모님들이 짊어져야 하는 문제일 수밖에 없다.

  

매도 먼저 맞는 것이 낫다고. 어차피 부딪혀야 할 고민이라면 먼저 그 고민을 알고 생각하고 있으면 좋다. 세상의 수많은 일들은 미리 알지 못했기 때문에 벌어지는 일들이 상당하기 때문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고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소를 잃을지에 대해 미리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의 발달 과정을 보면 대체로 비슷하다. 그러니까 유치원이 되면 조금씩 한글을 가르치고, 숫자를 가르치며, 미술 피아노 같은 예체능도 조금씩 접하게 된다. 내 아이가 그랬듯이, 친구도 그렇게 비슷한 발달 과정을 지나게 되어 있다. 그러니까 초등학생이 되면 한글을 조금 빨리 읽을 수 있어야 수업을 따라가기 쉽고, 2학년이 되면 두 자리 덧셈과 뺄셈을 하니까 아이가 이해하기 쉽게 조금이라도 미리 알려주면 학업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 어찌보면 사소한 것일지 모르지만, 그것이 결국에는 아이를 조금 더 쉽게 키울 수 있는 좋은 방법이 될 수 있다. 이 사소한 고민들 때문에 부모님들은 고민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내 아이도 그렇게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던 것이다. 

  

인생을 두 번 살았다면 첫 번째 인생과는 다르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처음에 실수했던 것을 반복하지 않을테니 말이다. 그런데 인생은 단 한번이지 않는가. 그래서 조금이라도 미래를 내다볼 수 있다면 어떤 일을 처리하는데 있어서 조급하게 처리하지 않을 수 있다. 미리 준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기 싫었던 운영 위원의 자리였지만, 덕분에 내 아이를 키우는데 좋은 기회가 되었다. 나보다 먼저 아이를 키운 모든 부모들이 나에게는 좋은 선생님이었다. 그들의 고민을 통해서 나의 내일을 만날 수 있었다. 나 역시 같은 고민을 하게 될 한 사람의 부모로서 미리 그 고민을 바라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내가 미래에서 온 사람처럼 느껴졌다. 

  

좋은 아빠가 되어야지! 실수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운영 위원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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