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학호 Feb 11. 2022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

  

독수리 오형제처럼 아내 친구의 가족들과 자주 놀러간다. 이번 주말에는 태안 신두리 해변에서 조개 잡이를 했다. 신두리 해변은 넓고 낮은 개벌로 유명한 곳이어서 아이들과 조개를 잡으면서 놀기에 좋은 바닷가다. 물이 빠지는 시간에 맞춰서 삼지창처럼 갈퀴가 달린 삽을 들고 조개를 찾으러 들어갔다.

  

아빠인 나는 짐꾼이나 다름이 없다. 그래도 친구들이 있어서 너무나 편안한 여행이었다. 아빠들이 모이면 못할게 없다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이 모든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된다. 삽으로 진흙을 파면서 조개가 있는지를 확인했다. 아이들은 신기해하면서 처다보았다. 조개를 발견하자 모두 다 같이 “우와~”하면서 좋아했다.

  

아이들의 배움은 가르쳐 주지 않아도 된다. 바라만 봐도 아이들은 금새 배운다. 똑같이 따라하는 묘한 재주가 있다. 한번 보여준 삽질인데도 자기들이 하겠다면서 달라고 했다. 그렇게 자기 스스로 조개를 잡기 시작했다.

  

솔직히 나도 조개 잡이는 처음이다. 어릴 적에 우리 집에는 자가용이 없었다. 그래서인지 멀리 놀러 간 추억이 없다. 조개잡이를 처음 한 이유일지도 모른다. 어릴 적에 했어야 할 조개잡이 놀이를 마흔 세 살이 돼서야 하게 되었다.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것도 잠시 너무 재미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다. 진흙 사이에서 조개를 발견한다는 재미에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불연 듯, 스치듯 지나가는 책이 생각났다. 사회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는 대한민국에 외환위기가 지나간 이후였다. 내가 바라본 직장 선배들의 모습에는 어떤 두려움이 있었다. 외환위기에 구조조정을 당한 동료들의 모습을 보면서 언제든 자신도 그랬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이었다. 가족을 부양해야 한다는 책임감 앞에서 그들의 미래는 너무나 불안해보였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는 나 역시, 나도 그렇게 될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레 걱정할 이유는 없었는데도, 그 불안감은 막연했다. 그래서 자기개발과 재테크에 집중했었다. 그때 읽었던 책인 구본형 작가의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였다. 마흔은 변화와 혁명의 시기라고 작가는 말했고, 끝나지 않은 지루한 연극의 제 2막이 아니라, 연극을 끝내고 진정한 삶으로 되돌아오는 나이가 마흔이라고 강조했다. 동시에 사회적으로 버림받은 자신을 구해내는 시기가 마흔이라고도 했다. 정리하자면, 마흔 살은 자신의 모든 것을 걸어서 새로운 인생으로의 전환에 성공해야 하는 나이였다.

  

실제로 그는 자신의 삶을 통해서 그것을 증명해 내고 있었다. 마흔 여섯 살에 직장을 떠나 ‘변화경영 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업으로 새로운 인생을 시작했다. 그러나 그가 단번에 사표를 내고 직장을 떠난 것은 아니었다. 사표를 내기 전에 자신이 직장이라는 조직을 떠나도 가족과 생계를 두려움을 극복할 수 있는지는 실험했다. 그렇게 그는 세권의 책을 내면서 새로운 삶으로의 도약은 시작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하다는 그 책이 내 마음 속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때는 이십대의 청년이었지만, 정말로 내가 마흔 세 살이 되면 가능할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살았다.

  

그러다가 아이들과 조개잡이를 하고 있는데, 불연 듯 내가 마흔 세 살이 돼서야 조개잡이를 처음으로 시작했다는 흥미로운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지금 나는 잘 살고 있는가? 행복한가? 새로운 일을 해야 하는가?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할 수 있는가?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정말로 우연하게 그때 읽었던 책의 제목과 내가 만나고 있었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게 되었다. 나는 부모님 속을 썩였던 아이는 아니었다. 무던하게 졸업하고 취업해서 결혼하고 아이를 키우면서 오늘에 이르렀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부모님과 함께 살긴 했어도, 스무 살이 되던 순간부터 경제적으로 독립해서 결혼도 하고 지금까지 살았다. 자영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보면서 나는 조금 안정적으로 살고 싶었다. 어떻게 직장인이 꿈이 될 수 있냐고 물을 수도 있겠지만, 그것도 누군가에게는 좋은 꿈은 될 수 있다고 생각한 이유는 내가 그런 꿈을 꿨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아이들을 키우면서 살고 있었다. 너무나 평범한 삶을 살고 있지만, 경제적 위기를 겪는 누군가에게는 부러운 삶일 수도 있다. 나 역시 지금의 평범함이 아이들이 성인이 될 때까지 이어질 수 있기를 바라게 된다.

  

가장의 어깨는 무겁다고들 한다. 솔직하게 그런 무거움을 느껴본 적은 한 번도 없다. 내가 다니는 직장에서도 한 번의 구조조정은 있었다. 다행히도 그 위기를 피할 수 있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면서 필요한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먹고 살만큼만 주어지는 월급으로는 부족해서 나는 재테크도 열심히 했었다.

  

마흔 세 살에 다시 시작했다는 작가의 이야기처럼 나도 그를 닮고 싶었다. 그래서 나도 마흔이 되면서 몇 가지 내 삶에 실험을 했었다. 지금 하는 일과는 다르게 내가 잘하고 좋아하는 것들 중에서 재테크와 관련된 주식 카페도 만들어보고, 책도 써보았다. 운이 좋게 책도 나왔다. 그것이 업이 될지 아닐지는 모른다. 그러나 시도는 할 수 있는 것이다.

  

좋은 취미도 가져보았다. 마흔이 넘어서 시작한 배드민턴은 왜 이렇게 재미있는지. 재미가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력도 부쩍부쩍 늘어서 체육관에서 조금 친다는 회원과도 실력을 겨룰 수 있는 정도가 되었다.

  

아이들 키우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서 이사도 했다. 맹모삼천지교인지는 몰라도,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좋은 환경을 만들어주고 싶은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역시나 마흔이 넘어서 시작해 본 도전이다.


  

내 삶이 어떻게 변할지는 나 자신도 모른다. 지금 적고 있는 ‘엄마 아빠가 되는 중’이라는 이야기가 또다른 엄마 아빠에게는 희망의 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그렇게 책이 되어 나의 이야기가 세상에 퍼진다면 나의 이야기를 듣기 위한 자리가 만들어질지도 모른다. 그렇게 내 삶은 바뀔지도 모른다.

  

좋은 아빠는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만 하는 아빠가 아니다. 아빠 스스로 좋은 삶을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때에 좋은 아빠가 될 수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조개 잡는 방법을 알려주지 않아도 아이들은 아빠가 조개 잡는 모습을 보면서 배울 수 있는 것처럼, 아빠가 변화하는 그 모습을 자연스레 체득하게 된다고 나는 생각한다. 마흔 세 살에야 비로서 조개잡이를 시작한 나는 남은 인생을 어떤 삶으로 살아갈까? 이것이 나의 가장 큰 화두다. 이 화두를 풀어가는 모습을 아이들은 보고 느끼고 배울 것이다. 좋은 아빠가 되고 싶다. 아빠에게도 아빠의 인생이 있다. 스스로 자기다운 삶이 되기를 바라는 이유다. 결국 그 모습을 아이들이 닮아가기 때문이다.

이전 08화 육아의 고수를 만나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