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링하고 오세요. 나 3시에는 출근해야 하니까, 그때까지만 돌아와 주세요.”
오늘은 토요일. 아내는 1박 2일로 친구들과 놀러갔다. 몇 일 전부터 다녀와도 되겠냐는 질문을 했었다. 당연히 나의 대답은 오케이. 가끔씩 반복되는 일상을 떠나야 한다고 나는 생각하는 사람 중에 한명이다. 직장에서도 그렇지 않은가. 안식년이란 것이 있다. 매주 주말은 쉬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육아에는 그런 휴식이 없다. 무수한 반복만 있을 뿐. 육아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는 휴식이 없기 때문이다.
교대 근무를 하는 나는 오후에 출근을 하는 달에는 주 4일 근무를 한다. 저녁에는 아이들과 보내지 못하는 단점이 있지만, 그래도 3일은 집에서 쉰다. 상당히 매력적인 직장이다. 달력에는 내가 쉬는 날 빨간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다. 이 빨간 날은 내가 쉬는 날이기도 하며, 동시에 아내가 회식하고 돌아오는 날이기도 하다. 아내는 내가 쉬는 날마다 자주 늦게 돌아온다.
나도 놀고 싶다. 역지사지라고, 그만큼 아내도 놀고 싶을 것이다. 남편 없는 저녁에 아이들과 지지고 볶고 나면 얼마나 힘들까. 그래서 나는 언제나 오케이라고 말한다. 놀아라! 즐겨라!
내 기억에 아직도 생각나는 때가 있다. 둘째 출산 전이었다. 복직을 앞두고 친구들과 제주도에 2박 3일을 다녀온 적이었다. 나는 휴가를 냈고, 아이를 봤다. 소위 말하는 독박육아를 했다. 쉽지 않았지만 어쩌겠는가. 피할 수 없는 고통을 즐겨야 하듯이 아이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아내가 돌아올 시간에 맞춰서 김포 공항으로 마중을 나갔다. 게이트에서 아내가 나오는데 나는 깜짝 놀랐다. 얼굴에 살이 통통해져 있었던 것이었다. 얼마나 편하게 여행을 했으며 저럴 수 있을까? 아이가 있다면 제대로 놀기나 했겠는가? 아내는 행복해보였다. 얼굴에서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 육아를 할 때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저 행복의 얼굴은 도대체 어디서 온 것일까?
쉬어야 한다. 이왕이면 아주 길게 쉬어야 한다. 사람은 우물의 물과 같아서 그 우물이 썩지 않으려면 가두어 놓은 물을 비워야 하고, 또다시 새롭게 채워야 한다. 그런데 어디 일상이 그런가. 일상은 반복이다. 매일 똑같은 것들이 이어질 뿐이다. 육아가 특히 그렇다. 그래서 나는 이 반복되는 육아를 조금 더 잘해보려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어차피 반복이라면 조금 더 효율적이었으면 했다. 시간을 쪼개고, 앞으로 다가올 아이의 행동을 예측해서 사전에 준비하면서 계획된 하루를 만들어보고 싶었다.
그런데 그 계획은 생각처럼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았다. 나는 그 이유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했다. 아이를 키우는 육아는 직장에서처럼 일이 아니다. 먹고 놀고 자는 일상은 그 자체로 즐겨야 하는 것이지, 그것을 계획하고 관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이었다. 더욱이 아이의 일상은 미처 생각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하다. 어떻게 똥을 일정한 시간에 쌀 수 있을까? 어떻게 똑같은 시간에 낮잠을 자서 똑같은 시간에 밤잠을 잘 수 있을까? 또 어떻게 매일같이 이유식을 잘 먹을 수 있는가? 이건 애초부터 불가능한 것이었다. 그런데 나는 그것을 직장에서의 일처럼 효율을 덧붙였던 것이다. 그리고 그 효율이 떨어지면서 육아의 재미를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니까 육아는 잘하고 못하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육아는 그저 아이가 잘 먹고, 잘 싸고, 잘 자면 되는 것이었다. 성장의 시간은 생각보다 길다. 아이와 있으면 시간이 빨리 갈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은 이유는 그만큼 성장은 생각보다 더디기 때문이다. 가끔씩 미혼의 후배들 핸드폰에 조카 사진이 있는 것을 보게 된다. 후배에게 조카와 노는 것이 재미있냐고 물어보면... 대부분의 답변은 3시간이다. 조카와 3시간 이상 놀면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게 맞다. 그런데 부모는 3시간이 아니라 온 종일을 보내야 한다. 아니, 하루가 아니라 평생이다. 그러니 얼마나 지치겠는가! 지친 나를 회복시키는 유일한 방법은 ‘떠나는 것’이다. 잘 풀리지 않는 육아를 더 잘하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어떤 부모도 소중한 자식을 위해서 노력하지 않는 부모는 없기 때문이다. 그러니 지친 부모에게 더 열심히 노력하라는 조언은 아무 짝에도 쓸모없다. 아내에게 휴식을 주어야 한다.
남편 밖에는 이 휴식을 줄 사람이 없다. 소위 말하는 ‘남편 찬스’는 이때 쓰는 것이다. 육아에 지치고 힘들어서 미치기 일보 직전에 써야 한다. 그리고 남편은 그 찬스를 허락해주어야 한다. 그래야 아내가 숨을 쉴 수 있다.
남편도 힘들다. 나의 선배는 언젠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 나에게 짜증을 냈다. “아니, 우리 아내는 왜? 내가 퇴근하는 시간에 맞춰서 청소기를 돌리냐는 거야? 하루 종일 뭐 하는 건지 모르겠어!” 남편에게도 가정은 쉬는 공간이어야 하지만, 어쩌겠는가. 현실이란 그렇게 녹록치 않다. 늘 어떤 일이 내 앞에 있고, 그 일을 해결해야 하는 숙제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만큼 남편도 쉬고 싶다.
아빠가 되는 길을 한 번도 쉬운 적이 없었다. 좋은 아빠가 되는 또 하나의 방법은 좋은 남편이 되는 것이기도 했다. 아이를 잘 돌보는 아빠, 집안일을 잘 도와주는 아빠, 그리고 또 하나가 있다면... 아내에게 휴식을 줄 수 있는 남편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것이 아빠가 되는 길 중에 하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