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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학호 Feb 11. 2022

코인에 빠진 아내에게

친하게 지내는 후배가 고민이 있다면서 이야기를 꺼냈다.     


- 형님, 요즘에 아내하고 대판 싸웠어요.

- 왜?

- 아니... 애는 안보고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거에요. 틈만 나면 쳐다보는데 아주 미치겠더라구요.

- (나는 직감했다. 코인을 하는구나!) 코인하는거 맞지?

- (놀라면서) 아니, 형님 어떻게 아셨어요?

- 그게 원래 그런거야. 그거 하면 수시로 보게 되어 있어. 그건 너무나 자연스러운거야.

- 아니 그래도 그렇지. 애(새끼)를 봐야지 그게 중요해요.

- 그러면 너가 보면 되잖아. 애는 너가 봐. 그리고 아내에게 그거 할 시간을 줘.

- (답답하다는 듯이 말을 잊지 못하고) 하하.. 아니..

- 너도 해봐! 그게 그런거야!     

 

그렇게 우리는 이야기를 이어갔다. 물론 결론을 내리진 못했다. 그 이유는 그것이 투자이면서 동시에 투기임을 누구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주식이든 코인이든, 그것을 시작한 이유는 돈을 벌기 위해서다. 더 자세하게는 열심히 일해서 받는 노동의 소득보다 불로소득으로 얻어지는 자산의 소득이 너무 빠르게 상승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노동에서 희망을 찾지 못한 체, 자산 시장에서 수익을 탐닉하는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자산시장에서 돈을 잃은 사람은 잃은 돈을 만회하기 위해 투자를 계속한다. 반대로 돈을 번 사람도 마찬가지다. 일하지 않았는데 노동으로 번 돈보다 더 큰 수익이 발생되는 것을 확인하고는 자산 시장에서 벗어날 수 없게 된다.

  

모두가 돈을 벌기 위해서 자산시장으로 돈을 가지고 들어왔지만, 사실은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자산시장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을 다니면서 주식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자사주 같은 것들을 통해서 알게 되기도 하며, 동료들의 모습을 통해서 알게 되기도 한다. 모두가 돈을 잃었으면 투자를 생각하지 않았을텐데, 누군가는 돈을 벌었지 않은가. 그러니까 그 모습을 나의 현실로 가지고 오면서 꿈을 꾸게 된다. 나도 부자가 될 수 있다는 원대한 꿈이다.

  

오래 전부터 대한민국은 부동산 불패 신화가 있었다. 대략 2011년부터 이어진 경제의 저성장 속에서 부동산 불패 신화도 꺼져가는 듯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다시 부동산이 활화산처럼 타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코로나가 터졌고, 사람들은 ‘위기는 기회다’는 인식 속에서 주식시장에 인생을 걸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주식시장도 시들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코인이 해성처럼 등장했다. 2021년 1월말부터의 본격적인 상승이 시작되었다. 주식으로 인생역전을 꿈꾸던 사람들은 실망했고, 그때 코인에서 수십억을 벌어서 인생을 역전했다는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의 냄비근성은 전세계에서 돋보인다. 똑같은 코인의 가격도 한국 시장에서는 유독 비싸게 거래된다. 김치 프리미엄이라고 불릴 정도로 사람들이 많이 거래하기 때문이다. 주식시장보다 더 많은 거래대금이 오갔다. 그렇게 전국민 코인 시대를 열 정도로 대단했다.

  

열기는 엄청나서... 젊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코인 이야기’가 없으면 이상한 모임으로 치부될 정도가 되었다. 정말로 신기한 것은 이런 이야기가 소위 말하는 인터넷의 ‘맘카페’에서도 가장 인기있는 이야기 꺼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도지 코인, 리플, 비트코인이 얼마까지 갈 것이냐고 묻는 질문이 맘카페를 도배했다.

  

아이 키우는 것도 힘들고, 동시에 직장에서 일하는 것도 힘든 마당에 어째서 코인까지 하게 되었을까? 세상의 모든 현상은 저마다 바라보는 시선에 따라 다르게 평가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엄마들이 얼마나 돈이 필요했으면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까 애는 안보고 코인을 하는 엄마의 개개인에 잘못을 돌리고 싶은 생각보다는 우리 사회가 어쩌다보니 이렇게 되었는지를 돌아보는 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코인을 하는 엄마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아이는 거저 키워지는 것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부모의 엄청난 수고와 정성이 쏟아져야 가능하다. 그런데 애만 보면서 살 수는 없지 않은가. 돈도 벌어야 하고, 엄마 스스로의 커리어도 쌓아야 하지 않은가. 그런데 그것이 현실에서 가능한 것인가. 소중한 아이에게 좋은 음식 먹이고, 좋은 옷 입히고, 영유라도 보내려면 돈이 얼마나 많이 필요한가. 나는 그런 마음으로 후배의 아내가 코인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왕하는 코인으로 돈을 왕창 벌어서 경제적으로 걱정없는 인생을 살기를 바랬다. 그런 마음으로 후배와 이야기를 했다.

  

역시나 보수적인 후배가 나의 이야기를 수긍하지 않았다. 나 역시 후배를 설득하고 싶지 않았다. 아내의 코인 투자도 결국 돈을 왕창 잃거나, 왕창 벌어야 끝이 나는 결론에 도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코인 가격이 떨어진다고 코인 시장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그 사이에 떨어지면서 돈을 잃은 사람은 비관으로 가득해지고, 그만큼 가격이 떨어진 코인을 사는 누군가는 다시 돈을 버는 제로섬의 게임이 하루도 쉬지 않고 이어질 뿐이다. 그러니까 누군가는 돈을 벌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왕이면 후배의 아내가 그런 사람이 되기를 바랬을 뿐이다.

  시대가 변했다.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살면서 저축을 많이해서 경제적으로 풍요롭게 사는 시대는 오래 전의 이야기다. 시대가 변해도 열심히 일하고 알뜰하게 살아야 하는 것은 마땅하지만, 투자를 얼마나 잘하느냐에 따라서 그 사람의 경제적 풍요로움은 달라지는 시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지금을 살아가는 현명한 사람에게는 경제적인 측면에서 나의 욕망을 어떻게 절제하면서 욕심을 부리지 않으면서 살아가는지가 중요한 덕목이다. 투자 이면에는 투기적인 요소가 반드시 따라붙게 마련이라서, 투기도 결국 실패한 투자의 하나일 뿐이기 때문이다.

  

get rich slowly! 미국의 메릴린치라는 기업이 투자자들과 공유했던 슬로건이다. 부자는 천천히 되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의 마음은 그렇지 못해서 빨리 되려고 한다. 그래서 투기적인 행동을 하게 되어 있다. 인간의 심리가 그렇고, 그것을 자산시장은 부추기게 된다. 코인이란 것이 가장 대표적인 케이스다.

  

자녀를 가진 부모는 경제적인 관점에 대해서 깊이 고민해야 한다. 그 이유는 부모가 가진 경제적인 관점이 자녀에게도 그대로 물들기 때문이다. 소중한 자녀에게 돈에 대해서 아껴서 저축하라고만 가르치는 세상은 이미 오래 전에 끝났다. 그래서 어떻게 투자해야 하는지 알려주어야 하고, 그것을 알려주기 위해서는 부모가 그것에 대해 알고 있어야 한다. 자신도 모르는 것을 자녀에게 알려줄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부모가 좋은 모범 케이스가 되어야 한다.

  

두달 쯤 지난 요즘에 다시 후배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 형님... 잃은 돈은 어떻게 만회해야 해요... 미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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