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숙한 며느리와 미성숙한 시어머니
언젠가 직장에서 한 선배가 “결혼하고 처음엔 외지인 같은데, 아이를 낳으면 그래도 이제 그 집 식구가 된 거 같아.”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나 난 아이를 낳고도 크게 달라진 걸 느끼지 못했다. 오히려 아이를 낳고 시댁에서 더 멀어지는 걸 느꼈고 아이 때문에 상처받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이를 낳고 집에서 약 50일간 산후조리를 하는데 아이가 어리다 보니 외출은 꿈도 꾸지 않았다. 그런데 시누이가 남편에게 전화를 해서 한소리 했나 보다. 아기 데리고 한 번 집에 들러야 하는 거 아니냐, 엄마가 아기 보고 싶어 하는데 50일이 다되도록 어떻게 집에도 안 데리고 오냐 등 아기도 낳아본 적 없는 시누이가 시어머니 대신 남편에게 쏘아붙인 듯했다. 그 말은 들은 남편은 조심스럽게 이제 50일 지났으니 자기 집에 데려가는 게 어떻겠냐고 말을 꺼냈다. 그 조그만 신생아를 차를 태워서 굳이 왔다 갔다 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렇게 당신 댁에서 보고 싶다고 하시니 짐을 한바리 챙겨서 시댁으로 향했다.
그렇게 도착한 시댁. 남편은 주차하느라 조금 늦게 올라오고 나 먼저 아이를 안고 시댁에 들어갔다. 아이를 시댁에 내려놓고 손을 씻는데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뭔가 낯선 기운이 느껴진 건지 아니면 어딘가 불편했는지 나도 잘 모르겠다. 아이를 낳아 엄마가 된 지 얼마 안 되어 나도 미숙했고 사실 아이를 키우는 지금도 하나도 모르겠는 것들이 더 많다. 아이가 자지러지게 울기 시작해 얼른 달려와 안고 달래는데 생각보다 쉽게 달래지지 않았다. 집에서 이렇게 운 적은 없었는데 장소가 바뀌고 차를 타고 오는 게 힘들었나 하고 생각하는 찰나에 시어머니가 시누이에게 나를 비웃듯이 하는 말이 들렸다.
“아니 어떻게 지엄마가 애도 못 달래냐”
엄마가 안으면 바로 울음을 뚝 그치는 그런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드렸어야 하는데 불안하고 불편했던 아이는 결국 엄마를 아이 하나 달래지 못하는 그런 무능한 엄마로 만들어버렸다. 그렇게 몇 분을 울다 남편이 돌아오기 전 가까스로 아이는 진정이 되었다. 남편이 들어오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가만히 있는 아이가 원망스럽고 이런 시댁에 날 아이와 먼저 올려 보낸 남편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나 어찌 이것이 아이 잘못인가. 날 그렇게 취급하는 시어머니 잘못이지.
그렇게 방에서 진땀을 빼며 아이를 달랬던 나는 어머니의 말에 한마디 변명도 방어도 하지 못한 채 속만 부글부글 끓었다. “아이가 여기가 낯설어서 그런가 봐요.” 이렇게 한마디라도 할 걸, 하지 못한 게 아쉽다.
아이 데리고 오느라 고생했다, 아이가 차 타고 오느라 힘들었겠다 등 고운 말을 해주시면 나도 고운 마음을 먹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곱다고 곱지 않은 말을 들은 내가 내뱉고 싶은 말은 하나다.
“아이도 저처럼 여기 오기 싫었나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