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로운 나의 생일을 위해 소리치다
나는 어릴 적부터 생일을 화려하게 보냈다. 화려 하다의 사전적 정의 중 ‘어떤 일이나 생활 따위가 보통 사람들이 누리기 어려울 만큼 대단하거나 사치스럽다’가 아니라 ‘환하게 곱고 아름답다.’에 가깝다. 비싼 음식점, 많은 친구들, 가득한 선물… 과는 전혀 거리가 멀었지만 엄마가 직접 만들어주신 음식, 가족과 함께 보내는 시간, 그리고 항상 그 나이대에 딱 필요한 선물이 나의 생일 기억을 채워주고 있다. 엄마가 우리 집 천장에 가득 달아주었던 풍선은 내 생일이 참 환하게 곱고 이름다웠다는 기분 좋은 이미지로 저장되어있다. 그렇게 따뜻한 추억 속의 생일은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되었다. 남자 친구가 생긴 이후에도 생일 당일은 주로 가족과 함께 축하하는 경우가 많았다.
결혼을 하고 나니 남편과 내 생일뿐만 아니라 챙겨야 할 생일이 참 많아졌다. 시부모님, 부모님, 그리고 시누이 생일까지 생일만 따지면 한 달에 한번 꼴로 생일 축하 모임을 가져야 할 판이었다. 시부모님 생신을 챙기는 건 마땅히 해야 할 일이라 생각하고 그것에 대한 불만은 없었다. 그런데 남편 생일과 내 생일이 다가오면 꼭 시댁에 가서 식사를 해야만 했다. 처음에는 ‘내 생일까지 꼭 챙겨주시네’하고 감사한 마음이 컸다. 그런데 결혼 1년, 2년…5년 차가 되고 나니 그냥 시댁에 안 가게 해주는 것이 내 생일 선물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들기 시작했다. 물론 지금까지 그런 선물을 받아본 적은 없다. 생일자가 원하는 선물은 절대 안주는 생일이라니 참 아이러니한 내 생일이다.
나의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엄마는 나에게 결혼 초반부터 “너희 생일은 부부끼리 즐거운 시간 보내렴. 안 챙겨준다고 서운해할까 봐 용돈만 보낸다”하고 선언했다. 엄마가 보내주신 용돈은 만나서 밥 한 끼 먹지도 않고 안 챙겨준다는 서운함도 싹 가시게 만드는 아주 감사한 생일 선물이었다.
결혼 5년 차 즈음 무슨 일이었는지 2주 연속 시댁에 가게 되었다. 그러다 다음 주 남편 생일이 있어서 또 시댁에 가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주 연속 주말마다 시댁행이라니! 나는 어머니께 슬쩍 “어머니 다음 주 생일에도 또 모이나요? 오늘 그냥 생일잔치까지 할까요?”라고 말을 꺼내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무슨 소리야. 생일은 다음 주인데 아들 생일은 챙겨줘야지.”라고 하셨다. 아.. 아들 생일을 언제까지 꼬박꼬박 챙겨주고 싶으신 걸까. 그냥 이쯤이면 적당히 아들도 놓아주시고 아들 생일도 멀리서 축하만 해주셔도 감사할 텐데… 그러나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내 마음대로 무시할 수는 없기에 그렇게 남편 생일잔치는 다음 주로 밀리고 말았다.
그리고 한참 뒤 내 생일이 다가왔다. 어김없이 내 생일에도 모이자는 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내 생일을 빌미로 아들을 보고 싶은 어머니의 마음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잘 알고 있다.
“어머니, 제 생일은 안 챙겨주셔도 돼요. 이제 곧 명절이라 아버님 어머님 뵈러 갈 텐데 제 생일은 그냥 넘어가도 될 것 같아요.”
안 될 걸 알면서도 시도해보는 나도 참 우습지만 절대 통하지 않는 어머니의 한결같은 대답도 여전했다.
그렇게 결국 내 생일에도 모이기로 결정이 난 후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어머니의 말씀.
“너네 집은 생일을 잘 안 챙기나 보다?”
머리가 띵 해지는 걸 겨우 부여잡았다. 우리 집이 생일도 제대로 안 챙기는 그런 집이라고 비꼬시는 그 말투가 기분이 나빴다. 저 말 한마디가 내가 마치 생일을 귀중하게 여김 받지 못했고 또 귀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취급을 받는 것 같아서 속상하고 억울했다. 글쎄, 남편과 이야기 나누다 보면 나 또한 부모님께 생일 축하받았던 기억들이 매우 구체적이고 아름다운데 그런 건 안중에도 없으셨을 것이다. 우리 부모님께서 남편과 내 생일에 굳이 만나자고 하지 않으시는 건 자식들의 생일이 귀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자식들의 시간에 행여 방해가 될까, 부담이 될까 자리를 피해 주시는 거다. 그런데 그런 모습이 당신 가족은 생일을 잘 챙겨주고 우리 집은 잘 안 챙겨서 내가 생일 모임을 안 하려고 한다고 생각하셨나 보다. 그저 날짜를 기억해서 강제 만남이 목적인 생일이 과연 얼마나 기쁘고 행복할 수 있을까. 아들이 그렇게 보고 싶으시면 아들만 따로 만나서 생일 축하해주셔도 괜찮을 것 같은데 말이다. 더욱이 며느리 생일은 전혀 안 챙겨주셔도 되는데 … 생일에 누군가에게 축하를 받는다는 것이 스트레스가 되다니 참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후 아이가 태어나고 아이 생일까지 추가되어 시댁에서 하는 생일잔치는 하나 더 늘어났다. 아이 생일은 당연히 더 챙겨주고 싶으시니 어쩔 수 없지만 정말 제발 내 생일만큼은 이제 그만! 을 외치고 싶다. 언젠가 내 생일에 나 혼자 멀리 자유시간을 가지러 떠나버리고 싶다. 며느리 생일을 굳이 챙겨주시겠다면 남편과 아이만 시댁에 보내어 나 없는 생일잔치를 했으면 한다. 그것이 시어머니도 나도 가장 즐거운 나의 생일이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