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지윤송 Oct 30. 2022

결혼했으면 우리 집 가풍을 따라야지

너도 나도 아닌 우리의 가풍을 만들고 싶다

시어머니와 나는 맞지 않는다는 걸 서로가 직감하고 있었지만 그것을 수면 위로 떠올린 적은 없었다. 그저 며느리와 시어머니의 관계로 겉으로 보기엔 잔잔하게 찰랑거리는 물이었지만 사실 그 속에서는 엄청난 회오리가 깊은 곳에서부터 휘몰아치고 있었다. 그 회오리가 해일로 우리를 덮친 사건이 일어나고 말았다. 잔잔했던 물이 커다란 파도를 넘어서 갈등의 물을 뿜어내게 된 이유는 바로  내가 시어머니께 나의 주장을 강하게 하였기 때문이다. 일명 시어머니께 내 생각을 말했다가 큰코다친 일이다.

남편네 가족은 친척들과의 교류가 무척 많았다고 한다. 그래서 명절이 되면 늘 큰집으로 모여 항상 2박 3일씩 잠을 자면서 긴긴 명절을 함께했다. 나도 어린 시절에는 그렇게 시골 할머니 댁에 가서 친척들을 만나고 자고 오긴 했지만 중학생이 되고 난 후에는 그랬던 기억이 별로 없다. 또한 나의 친할머니 댁도 서울 근교라 음식 준비를 전날 우리 집에서 하고 명절 당일에 할머니 댁에서 모여 가족끼리 식사하고 밤늦게 다시 우리 집으로 돌아왔었다. 

우리 신혼집은 서울이었고 시댁도 서울이라 나는 당연히 잠을 잔다는 건 상상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남편이 명절에는 무조건 집에서 잠을 자야 한다고 말을 꺼냈다. "굳이? 불편하게 왜 자고 와? 명절 연휴 중 2일 시댁에 있어야 한다는 거야? 그럼 잠은 집에서 자고 다음날 또 갈게"라고 말했다. 그러나 남편은 그거와 상관없이 꼭 자야 한다는 말만 나에게 반복했다. 그래서 결혼하고 첫 해 명절은 그렇게 꼭꼭 좁디좁은 남편의 방에서 남편은 침대에, 나는 그 밑에 이불을 깔고 잠을 청하며 남편의 소원을 들어주었다. 정확히 말하면 시어머니의 명령이었겠지만. 그러다 결혼 2년 차에는 나도 더 이상 불편하게 잠을 자고 싶지도 않았고 제 집에만 가면 쓰러지듯 자신의 익숙한 침대에서 코를 골며 자는 남편이 미워져서 내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명절이 다가오길래 어머니께 전화를 드려 명절 일정 계획을 여쭈어 보고는 "어머니 그런데 잠은 집에서 자면 안 될까요?"라고 조심스레 말을 꺼냈다.  어머니는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어디 있냐는 듯이 "어? 잠은 자고 가야지~"라고 하셨다. 그때 나도 눈치가 없었는지 아니면 이왕 말을 꺼낸 거 끝까지 밀어붙이겠다는 생각이었는지 "어머니~ 안 자면 안 될까요? 전날 일찍 갈게요"라고 없는 애교를 끌어다가 한 번 더 요청했다. 어머니께서는 갑자기 차갑게 목소리가 변하시더니 "안돼. 너 자고 가!"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나는 "남편이랑 이야기 한번 해볼게요."라고 얼버무리며 어머니와의 통화를 마쳤다. 그리고 남편이 퇴근하길 기다리는데 그날따라 남편이 퇴근했다고 했는데 집에 들어오는 시간이 매우 늦어져서 초조했다. 

그리고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시뻘게진 얼굴로 들어와 나에게 말했다. "엄마한테 뭐라고 했어? 엄마 난리 났어." 남편은 내가 어머니께 뭐라고 했냐면서 다그쳤고 두 여자 사이에서 어쩌지 못하는 무능한 남자가 되어 있었다. 어머니가 아주 단단히 화가 나셔서 남편에게 엄청나게 쏘아붙이고 쏟아내신 것 같았다. 남편도 처음 겪는 일이라 당황했겠지만 단순히 잠은 집에서 자고 싶다고 한 아내를 마치 시어머니께 바락바락 대든 며느리 취급을 해서 서러웠다. 왜 자신과 상의하지 않고 그냥 엄마한테 말했냐고 나를 원망하는 남편의 모습에서 얼마나 어머니께 볶이다 들어왔는지 말 안 해도 알 수 있었다. 아마 잠은 시댁에서 자고 싶지 않다는 내 마음을 내비친 것이 아마도 어머니께는 대드는 것만큼이나 괘씸하고 미웠을지도 모른다. 

퇴근하자마자 남편에게 듣는 그 말과 남편의 태도에 나는 오열했다. 그리고 집을 나와버렸다. 나도 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고 결혼하고 처음으로 결혼한 걸 후회했다. 이 남자와 결혼한 걸 후회했다기보다는 결혼은 나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비통하고도 서러운 감정을 주는 일을 겪게 하는 것이구나를 깨닫는 순간이었다. 그냥 같은 서울 하늘에서 내 집에서 자고 싶다는 게 큰 잘못이구나, 며느리가 감히 의견을 말한 것이 이렇게 남편과 나 사이에 갈등을 야기시키는구나 하면서 동네를 배회했다. 

 그렇게 오열의 밤을 지나고 심약했던 나는 다음날 퇴근하고 시댁으로 갔다. 불편한 관계를 이어가고 싶지도 않았고 또 힘들어하는 남편을 그냥 두고 볼 수 없어서 바로 꼬리를 내리게 되었다. 명절에 잠은 자야 되는 거구나 하고 내 생각은 다시 깊고 깊은 심해에 고이 내려보냈다.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네, 알겠어요."라고 말하는 나에게 마지막 한마디로 도장을 찍으셨다.


"결혼했으면 우리 집 가풍을 따라야지."

그리고 어머니의 생각을 화풀이하듯 줄줄이 말씀하시는데 고개 숙였던 나의 목은 펴지지 않았으나 여러 가지 의문 덩어리들은 스멀스멀 기어 올라왔다.

어머니의 말씀은 요약하자면 대충 이랬다. 요즘 애들은 결혼하면 다 똑같이 반반하고 너무 너 하나 나하나 따지는 경우가 많더라, 그러나 여자가 결혼을 했으면 반반이 아니라 시댁에 조금은 더 해야 하는 거다. 그러니 너도 우리 집 가풍을 따라야 하고 그러면서 맞춰가는 거다라고 하셨다. 가풍은 따라야 하고 며느리 생각은 듣지 않으시는데 뭐를 맞춰간다는 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결론은 그러니 넌 잔말 말고 명절에 와서 하루 자고 가라였다.


여기서 잠에 대한 나의 거부감이 컸던 이유를 분석하자면 첫 번째는 남편의 불안한 태도가 가장 컸다. 남편에게 자신의 아내와 어머니가 갈등을 일으킬 거란 건 꿈에도 생각해보지 못한 시나리오였을 것이고 그 사이에서 자신은 매우 잘 해낼 거란 착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편은 시나리오 예상에도 실패했고 둘에게 모두 잘하는 훌륭한 남자도 아니었다. 어머니의 말도 들어야 하고 아내 기분도 맞춰주어야 하는 불쌍하고 나약한 남자에 불과했다. 두 여자 사이에서 눈치보기 바빴던 남편이 진정한 나의 편이 아닌 남편이라는 걸 실감했다. 

두 번째는 어머니가 화가 나셨을 때 한 행동이다. 어머니는 나와 통화를 하고 난 후 나에게 뭐라고 하실 수는 없었나 보다. 어쩌면 나에게 다시 전화하지 않으신 것이 참으로 감사한 일 일수도 있다. 직접적으로 어머니의 화를 받아내지 않고 남편을 거쳐서 들은 게 다행이기도 하다. 그러나 바로 아들에게 전화하여 쏟아내신 것이 과연 최선의 선택이셨을까 싶다. 앞으로도 내가 무언가 잘못하면 아들에게 바로 알리고 분노의 화살을 아들에게 쏘아대실 거란 걸 알려주시는 듯했다. 하지만 하나는 알고 둘은 모르시는 어머니. 당신 아들이 그로 인해 괴롭고도 괴로운 밤을 지새우게 된다는 걸 말이다.  

마지막은 ‘자는 것’에 대한 우리 집과의 온도 차이도 한몫을 했다. 친정부모님은 “불편하게 뭐하러 자니? 너네는 너네 집에서 자고 혹시 힘들면 굳이 명절에 안 와도 된다. 시댁도 갔다 오는데 굳이 명절이라고 처가에 구색 맞추며 안 와도 돼”라고 하셨다. 당연히 친정에 안 들렸던 명절은 없었다. 시댁에서도 자는데 친정에서도 꼭 하루 자겠다고 고집부린 적도 있다. 그러나 아빠가 우리가 자는 게 불편하다고 제발 가라고 그래서 잘 수 없었다. 우리 부모님의 기본 마인드는 최대한 ‘우리 부부 편하게’에 맞춰져 있었기에 시부모님도 그런 줄 알았다. 하지만 시부모님은 우리 편한 명절이 아닌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명절을 원하셨기에 그것을 따라야 했다.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명절은 당연한 거라고 나도 동의한다. 시부모님이 원하시는 건 가족이 모두 함께 ‘자는’ 명절이라고 정정해야겠다.

 이 모든 과정을 겪고 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명절에 꼭 잠을 자고 온다. 아이가 생겨 식구가 늘어 잠잘 곳이 좁아졌지만 그래도 꼭 자고 온다. 아이가 조금 더 크면 언젠가 자고 오는 것도 그만하겠지 하고 나 혼자 기대 중이다.

이전 06화 그런데 왜 넌 잘하는 게 없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