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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송 Oct 30. 2022

그런데 왜 넌 잘하는 게 없니

팩트 공격인가 아니면 인신공격인가

 어릴 적부터 나는 부모님이 이것저것 많은 걸 배우게 해 주셨다. 그래서 바이올린, 피아노, 미술, 발레, 스케이트, 스키, 보드, 수영, 심지어 종이접기도 배우러 다녔다. 동네 아줌마들과 합심한 엄마는 지나가는 학원의 원어민에게 말도 걸어 원어민 영어 과외도 시켜주셨다. 어찌 보면 우리 엄마는 참 열성 엄마였다. 덕분에 나는 한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두루두루 다 경험해보고 할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학창 시절 친구들과 스케이트를 타러 가도 신발 신을 때부터 어기적 걷던 친구들과 다르게 혼자서 척척 끈을 묶고 뒤뚱거리는 친구의 손을 잡아주는 역할을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남편은 나와 달랐다. 빠듯한 살림에 누나도 있었기에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지 못했다고 한다.

결혼 전 남편에게 “자기는 스키 안 타봤어? 보드는 왜 안 배웠어?”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나와 연애하고 20대 후반이 되어서야 친구에게 보드를 배우기 시작했고 여자 친구에게 부끄러운 모습을 보이기 싫다는 일념으로 새벽마다 보드 연습을 하고 난 후 나와 보드를 타러 다니기 시작했다. 그렇게 남편은 그동안 자신이 채우지 못했던 그 간격을 급하게 채워가며 박자를 맞추고자 노력해주었다. 남편의 운동신경이 더 좋아서인지 나중에는 나보다 보드를 더 잘 타게 되었다. 

 정확히 어떤 날이었는지 왜 그렇게 차를 타고 있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어느 흐린 날 오후였다. 남편과 나 그리고 시어머니가 함께 차 안에서 우리 부부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나누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남편이 “나는 영어를 너무 못해, 영어를 좀 잘했으면 좋겠어.”라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나에게 어릴 때 영어를 어떻게 배웠냐며 발음이 나보다 좋다고 말해주었다. 자연스럽게 난 엄마의 치맛바람 덕에 원어민과 영어를 했던 기억을 말하게 되었고 그 덕에 영어는 못해도 잘하는 척 혀 굴리는 건 할 수 있다고 우스갯소리를 해댔다. 그러면서 엄마가 시켜준 여러 예체능 학원에 대한 기억을 더듬으며 그중 수영과 스키 이런 건 정말 배워두길 잘했다…라고 말하는데 뒷자리에 앉아계시던 어머니의 숨결이 가까이 느껴지는 순간 강력한 한 마디가 내 뒤를 가격했다.


“그런데 너는 어째 크게 잘하는 게 없니?”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지금 뭐라는 거지?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당신 아들 못 시켜준 거 다 해봐서 잘났다, 그래 너 잘났으니 이제 그만 말해라. 이 메시지가 주목적이었을 거라 생각한다. 나도 눈치 없이 어머니 앞에서 내 어린 시절의 학원 이야길 해댔으니 내 잘못이 컸으리라. 그런데 꼭 그렇게 쏘아대며 나에게 말을 했어야 할까? 그때 나는 너무 당황하여  “네? 하하하 그러게요.”라고 대답해버렸다. 그리고 그 후의 기억은 순간 창 밖으로 보이는 그 뿌연 하늘과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것 같은 간판들 뿐이다. 진짜 흐린 날이었는지 먹먹하고 황당한 심정으로 내 눈앞이 흐려졌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직도 그때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리고 쿵 내려앉는 기분이다.

되감기를 하여 다시 돌아간다면 “뭐라고요? 그걸 지금 질문이라고 하시는 거예요? 오빠는 저보다 못하는 게 더 많은데요?”라고 남편을 팔아서라도 다시 되받아치고 싶은 심정이다. 내가 아직도 저 말을 떠올리면 욱하는 감정이 올라오는 건 그때 맞은 뒤통수가 얼얼하여 상처가 가시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집이 부자였다면 그런 어머니의 공격에 콧방귀도 뀌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사실 우리 집은 지극히 평범했다. 엄마 혼자 아침부터 저녁까지 쉬지 않고 일하며 벌어오신 돈으로 그저 딸 하나 귀하게 키워보겠다고 어디서 무시당하지 말라고 이것도 시켜보고 저것도 시켜주었을 뿐이다. 그다지 넉넉하지 않은 살림에도 엄마는 경험하고 배워두는 건 중요하다고 늘 말했다.

어쩌면 어머니 말씀이 맞을 수도 있다. 난 한번 배우고 할 줄 알게 되면 그때부턴 나 혼자 배운 걸 토대로 기회가 되면 써먹을 수준 정도에 머물렀다. 예를 들면 스키도 매년 배웠던 건 아니다. 어떻게 방향을 틀고 속도 조절을 하며 내려가면 되는지 한 두 번 배우고 그 이후엔 친척들 따라 스키장에 가서 연습하였다. 수영도 접영 과정이 끝나곤 그만 다녔다. 물에 대한 두려움이 없고 생존수영을 할 수 있게 되었기에 더 배울 필요가 없었다. 웃기지만 발레의 경우 엄마가 발레학원에 왔다가 발레에 1도 어울리지 않는 내 몸을 보고는 몇 달 후 관뒀다고 한다. 그때부터 가녀린 친구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던 나를 떠올리면 엄마와 난 지금도 깔깔대고 웃으며 발레 학원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대학생 때 취미생활로 문화센터에서 발레를 조금 배웠는데 비둔한 몸뚱이로도 그 어린 나이에 배운 기본자세를 기억하여 선생님께 칭찬을 받았다. 그때 처음으로 참 쓸모 있는 유년시절의 학습이었다고 느꼈다. 뭐든지 그냥 배워두면 나쁠 건 없다. 굳이 아주 잘하지 않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그걸 콕 집어서 그리고 내가 배운 모든 걸 한 번도 본 적도 없는 분이 그렇게 깎아내리고 싶으셨을까. 지나가는 남의 자식에게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을까. 유년시절 자랑하는 것 같은 며느리가 아니꼬울 수는 있어도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 실례가 아닐까.

 내가 며느리로서 요리를 잘하지 못해서 혹은 용돈을 많이 드리지 못해서 욕을 먹는다면 오히려 덜 서운할 것 같다. 그러나 우리 엄마의 노고로 인해 풍요로웠던 나의 유년시절이 부정당하는 것 같아 난 저 말에 더욱 분노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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