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에서 느껴지는 당신의 생각
한 사람을 보여주는 여러 가지 중에 외모, 집안, 학벌 등도 있지만 그 사람을 제일 잘 드러내는 것은 말씨라고 생각한다. 그 사람의 언어생활을 보면 그 사람이 살아온 환경은 물론 생각, 습관, 직업까지도 유추할 수 있다. 그래서 요즘 더욱이 시도 때도 없이 욕설이 난무한 사람들을 보며 언어가 자신을 대변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 여겨지기도 하고 한편 나의 언어생활을 되돌아보게 된다.
왜 시어머니 이야기에 이런 말씨 타령을 하냐면 툭 내던지는 말뿐만 아니라 말씨에서 오는 가시가 더 날카롭고 무섭기 때문이다. 일단 시어머니와 나는 말하는 어조와 태도가 매우 다른 편이다. 말씨는 어느 것이 옳다 그르다 할 수 없는 부분이므로 누가 더 좋다 나쁘다 판단하려는 게 아니다. 그냥 다르다는 걸 인정하고 서로 이해하면 된다. 그런데 그 다름이 시어머니와 며느리 관계에서는 불편함으로, 그 불편함이 불쾌함으로 이어질 때가 자주 생겨 곤란하다.
어머니의 목소리는 큰 편이고 어조의 변화가 극명하다. 오죽하면 나의 시누이도 어머니가 뭐라고 말씀하시면 "엄마 시끄러워. 왜 이렇게 시끄러워?"라고 핀잔을 줄 정도이다. 반면 나는 시어머니 입장에서 답답할 정도로 조곤조곤 말하는 스타일이라서 시댁에 가면 강한 시어머니의 어조에 신경이 늘 곤두서게 된다. 물론 이제는 그것조차 익숙해져서 그러려니 한다. 그런 스타일의 말씨를 쿨하다고 표현하는 게 적합하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남편 쪽 가족들은 마치 매우 쿨한 사람들이라 스스로를 칭하면서 욕설도 쓰고 말의 어조가 센 편이다.
같은 말을 하더라도 말의 어감에 따라 듣기 괜찮은 말이 될 수도 있고 매우 거북한 말이 될 수도 있다. 시어머니는 하는 말마다 가시 돋친 말로 날 괴롭혔는데 거기에다가 강하고 센 말씨가 더해지니 그 공격력은 더욱 날카로워졌다.
어느 명절 전날 어머니 댁에 이런저런 반찬을 해서 싸들고 갔다. 사실 반찬들도 엄마가 굳이 하라고 등 떠밀어 엄마와 함께 밤이 늦도록 만들어 간 눈물의 반찬이었다. 어머니가 상을 차리라고 나에게 접시와 젓가락을 주셔서 내가 해간 반찬과 어머니가 만드신 반찬을 나름 예쁘게 놓으려고 고심하고 있었다.
그런 나를 보시더니 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 너 젓가락질 못하니? 니네 엄마가 그렇게 가르쳤니?"
젓가락질 잘해야 밥 잘 먹나요 라는 가사의 노래를 틀어드리며 춤이라도 춰야 했었나? 반찬 열심히 만들어 간 며느리에게 칭찬은 바라지도 않았는데 그 반찬 놓는 사람에게 젓가락질 훈수라니 두르고 있던 앞치마를 내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 우리 엄마가 내게 젓가락질을 바르게 안 가르쳤을까. 밥 더 잘 먹으려고 내가 편한 대로 젓가락질해서 우리 엄마 먹칠하는 내 잘못이겠지 싶었다.
사실 젓가락질 지적은 여기저기 많이 받아온 터라 크게 타격감이 없었는데 내가 듣기 싫은 말은 '니네 엄마'이다. 어머니는 참 우리 엄마에게 '니네 엄마'라는 말을 많이 하신다. '니네 엄마'는 마치 아랫사람에게 굴욕을 줄 때나 사용하는 말 같아서 정말 듣기 싫다. 오죽하면 배우자끼리 싸울 때에도 "너네 엄마가~"라는 말은 금기하는 게 일종의 규칙 아닌가?
그 이후에도 종종 남편과 시댁에 들를 때면 "주중에 뭐 먹을 건 있니? 니네 엄마가 반찬 많이 해줘서 안 싸줘도 되지?" 등의 그놈의 니네 엄마는 항상 등장한다. 어느 날 한번 쌍심지를 켜고 '니네 엄마' 호칭을 정정해드리고 싶었지만 소심한 며느리는 늘 마음으로만 칼을 간다. 그리고 늘 어머니가 그렇게 말하는 건 결국 어머니의 언어생활이 어머니라는 사람을 보여주는 거라고 여기고 만다. 또한 한편으로는 나와 우리 엄마를 딱 며느리와 그 엄마로만 취급하는 어머니의 생각을 대변해준다고 생각되어 씁쓸하기도 하다. 아주 아주 소중하고 존중하며 예뻐하는 존재에게, 그리고 그 존재를 낳고 키워준 부모에게 저렇게 말하진 않을 테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