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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송 Oct 27. 2022

이거 우리밀이니

건강하게 사는 시어머니의 전혀 건강하지 못한 말

연애 기간이 길어지면서 우리는 결혼을 전제로 만나게 되었고 양가 부모님들도 어느 정도 결혼을 염두하고 계신듯했다.

남자 친구가 아버지 생신인데 부모님이 나를 초대하고 싶어 하신다고 같이 가도 괜찮냐고 조심스럽게 물어보았다. 나를 초대해주신 것은 참 감사한 일인데 솔직히 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거절하고 안 갈 수 없는 노릇 아닌가? 그래서 알겠다고 하고 작은 선물과 케이크를 사 가겠다고 말했다. 결혼도 안 했는데 무슨 선물이냐며 남자 친구가 극구 말려서 선물은 관두고, 그럼 빈손에 갈 수 없으니 케이크를 사가는 것으로 약속했다. 나름 신경 써서 예쁜 케이크집에 가 케이크를 미리 주문했다. 우리 부모님 생신에도 이렇게 주문한 적이 없는 것을 떠올리며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동네 빵집에서 쉽게 살 수 있는, 그것도 그 시간대에 남아있는 케이크 중에 한 번에 먹을 수 있는 작은 사이즈 1호로 주문했던 작년 엄마의 생신을 떠올리며 씁쓸해졌다. 올해는 멋진 케이크로 주문하리라 하고 불효녀는 속으로 다짐을 했다.

그렇게 주말 데이트를 남자 친구 아버님 생신잔치로 대신하는 그날, 케이크를 사들고 식당으로 향했다.

“생신 축하드려요”

“뭘 이런 걸 사 왔어” 하고 반기시는 아버님.

그런데 그때 케이크를 들고 있는 나에게 꽂히는 한마디

“이거 우리밀이니?”

“네?”

“우리 집은 우리밀로 만든 빵 아니면 안 먹는다.”


어머니는 그렇게 케이크를 사간 나에게 우리밀 타령을 했다. 우리밀이고 아니고 가 그렇게 중요한 일이었을까. 어색하고 어려운 자리에 초대되어 나름 신경 써서 가져간 그 케이크가 우리밀 잣대에 평가받는 꼴이라니. 농림축산 식품부에서 어머니를 우리밀 장려로 상이라도 드려야 할 판이다.

다행히 유기농 빵집에서 주문한 케이크라 "유기농 빵집이긴 한데 아마 국산 우리밀로 만든 빵일 거예요"라고 억지로 웃으며 상황을 모면했지만 진짜 우리밀인지 아닌지는 나도 모르겠다.

어머니의 그 질문으로 인해 생신잔치 내내 나의 손은 민망함을 씻지 못했고 섭섭했던 내 마음은 치유받지 못했다.

나는 결혼 후에도 케이크는 사가지 않는다. 케이크는 시누이가 사 오고 우리는 다른 선물이나 용돈을 드리기로 했다.

그런데 그때 내가 진짜 내뱉지 못한 말이 하나 있는데 아직도 하지 못해서 아쉽기만 하다.

"어머니, 아드님은 우리밀 아니어도 아무거나 다 잘 먹던데요?"

아, 이게 아니다.

"어머니, 아드님은 우리밀 아니어도 아무거나 다 잘 처먹던데요.."

하, 그래 이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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