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목소리 듣고 싶은 시어머니의 명령
신혼여행을 다녀와서 양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리는 전형적인 결혼 일정을 마치고 우리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사실 결혼하고 깨 볶는 신혼 생활을 누린다기보단 우릴 깨워주던 부모님 없이 사는 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우선이었다. 스스로 일어나 아침을 대충 때우고 바쁘게 출퇴근을 하며 안 해본 집안일을 해보느라 정신이 없었다. 나도 남편도 자취 경험이 없이 부모님 밑에서 엄마 밥 얻어먹고 다니던 팔자 편한 청년들이었는데 음식물 쓰레기 버리기, 화장실 청소하기, 바퀴벌레 때려잡기(우리의 신혼집에 바퀴벌레가 등장하여 온 집안을 난리 치며 호들갑을 떨었다.) 등 어리숙한 두 명의 남녀가 진정으로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고 있었다.
물론 이제 나의 보호자는 부모님이 아니라 남편이었기에 보수적인 아빠의 눈치를 보느라 못했던 ‘연애질’을 신나게 시작했다. 밤늦게 둘이 심야영화보기, 밤 산책하기, 야식 시켜먹으며 놀기 등 결혼한 부부만이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마음껏 해보았다. 아무런 걱정 없이 둘만의 시간에 여유로웠고 결혼해서 좋다는 생각만이 가득한 귀엽고 순진했던 나날들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꽤 지나고 명절이 다가왔다. 결혼 후 첫 명절이니 나름 어떻게 명절을 맞이해야 하는지 의논도 하고 양가 부모님 댁에 찾아갈 때 무얼 사갈지, 용돈은 얼마를 드릴지에 대해 고민했다.
남편과 함께 남편의 본가에 갔다가 제사를 드리러 추모 공원으로 이동했다. 바람이 제법 쌀쌀하게 부는 추모 공원에 앉아 비석도 닦고 주변 정리도 하고 있는데 어머니가 아들을 향해 입을 떼셨다.
“결혼하고 어떻게 연락 한번 없니? 전화도 자주 좀 하고 그래야지. 앞으로는 일주일에 두 번씩 전화해라”
그리고 나를 쓱 쳐다보시더니 “너도! 너도 나한테 두 번씩은 전화해라.”라고 덧붙이셨다.
결혼하고 아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어머니를 떠나 집은 그립지 않은지 하루하루 궁금하셨나 보다. 결혼했다고 연락이 없는 아들에게 서운하신 마음을 강하게 드러내신 것이다. 아들이 보고 싶고 아들의 일과가 궁금한 건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이해하려 노력했다. 그런데 전화를 하라고 그것도 횟수를 정해서 하라는 것 자체가 숨이 막혀오는 것 같았다. 원래 공부도 하라고 하면 더 하기 싫듯이 전화하라는 말을 들으니 하려는 생각도 없었지만 더 하기 싫어졌다. 하지만 난 참 어리석게 착한 며느리였기에 “네 어머니”하고 웃으며 대답하고 그 후로 몇 달간 일주일에 몇 번씩 꼬박 전화를 했다.
그럼 남편은 우리 부모님께 전화를 했을까? 우리 부모님은 애초에 전화하는 것 자체를 바라지도 않으셨고 어쩌다 남편이 아빠께 전화하면 “왜 무슨 일 있어?”하고 물으시곤 했다. 결혼하여 독립한 아들에게 전화하라고 하는 것도 황당하지만 며느리에게도 전화를 요구하는 시어머니도 참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일명 전화 사건으로 남편과 나는 잠자리에 들기 전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다. 우리 둘 다 어머니께서 많이 서운하셨나 보다고 어머니 마음을 헤아리는 쪽으로 이야길 나누었고 일단 지금은 어머니 마음을 다독여드리는 것이 우선이니 전화를 규칙적으로 잘해드리자고 약속했다. 남편은 그 이후 정말 퇴근길마다 어머니께 주 5일 전화를 했다. 주말은 나와 시간을 오래 보내니 전화를 따로 하진 않았지만 퇴근길에 뭐라도 사 오라고 시키려고 전화하면 남편은 늘 통화 중이었다. 아까 전화 안되던데 누구랑 전화했냐고 슬쩍 물으면 항상 “엄마한테 전화했어.”라고 돌아오는 남편의 대답. 남편은 그렇게 착하디 착한 효자 아들이었고 어머니의 아들의 전화에 만족하셨는지 점차 뜸해지는 며느리의 전화에는 더 이상 다른 말은 하지 않으셨다.
친정 엄마에게 하는 전화도 억지로 하다 보면 성이 날 터인데 시어머니께 드려야 하는 전화는 정말 하기 싫은 방학 숙제 마냥 미루고 미루다 결국 한 번씩 했었고, 전화를 하는 시간대와 해야 할 말을 미리 생각하고 연습하여 전화할 때가 많았다. 시어머니께 “엄마 뭐해? 그냥 했어.”라고 할 순 없지 않은가. 일단 도레미파솔의 솔까진 아니더라도 최소 파의 목소리로 “어머니”라고 시작해야 하는 그 전화는 나의 심사를 뒤틀리게 하는 첫 단추였다. 그 단추가 잘못 끼워졌기에 앞으로 시어머니와 나는 계속 어긋나게 되었고 사사건건 부딪히며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고부관계가 되었다.
일명 전화 사건을 친구들에게 말하면 시어머니께 전화해서 무슨 말을 하냐고 묻는 경우가 많다. 할 말이 없다는게 대체적으로 공통된 의견이다. 그리고 일주일에 두 번 이상 전화한다고 하면 경악하는 친구들도 있었다. 일 년에 두 번 전화도 할까 말까라고. 그럼 언제 전화하냐고 했더니 남편이 할 때 한마디 거들거나 아니면 그냥 얼굴 뵐 때 대화를 한다고 하였다.
사실 전화하라는 것 가지고 참 쪼잔하고 예민하게 군다고 생각될 때도 있다. 전화하라면 그냥 기쁜 마음으로 좀 하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을 것이다. 어른께 안부 인사드린다는 셈 치고 자주 전화드리면 가까워지고 친해지는 계기가 되지 않을까 긍정적으로 바라보려 노력을 안 해본 건 아니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 지금 돌아보면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전화 여러 번 한다고 가까워지는 사이는 아닌 것 같다. 만약 진짜 가까워질 사이였다면 먼저 전화하라고 시키지도, 그리고 전화하라는 말이 나오게 만들지도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지금은 어떻게 하고 있을까? 남편은 여전히 퇴근길에 어머니께 전화를 드리고, 나는 전화를 전혀 하지 않는다. 아들 목소리만 들으면 충분하고 이젠 나 대신 손주가 영상통화를 하기에 며느리의 전화는 사실상 전혀 필요가 없다. 그때에도 남편에게만 따로 “너 전화 좀 해라”’라고 말씀하셨다면 나의 거부감이 덜했을까? 결혼하고 연락 한번 없다는 괘씸죄가 남편과 나에게 모두 적용된 전화 사건은 시작부터 결말까지 아름답지 않은 기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