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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윤송 Oct 30. 2022

네 엄마가 밥도 잘 안 주지

내 자식 밥은 잘 챙겨 먹이지 말입니다

신생아는 수유 텀이라는 것이 있다. 먹고 싶을 때마다 먹이면 제일 좋겠지만 난 아이가 언제 먹고 싶은지 잘 몰랐다. 입 주변에 손을 대면 입을 벌리고 따라온다는 이야기에 손가락을 톡톡 대보면 아이는 24시간 입을 벌리고 따라왔다. 이건 뭐지? 그래서 나는 시기별 수유 텀을 찾아보고 먹고 자는 스케줄에 따라 먹이기로 했다. 처음엔 약 2시간마다 먹던 아이가 자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수유 텀이 점차 늘어났다. 그렇게 내가 생각한 수유 텀이 있는데 외출을 하게 되면 수유 시간이 약간 깨지게 된다. 그래서 보통은 외출 직전에 수유를 하고 출발하여 아이의 기분이 좋을 때 이동을 했다.

시댁에 갈 때도 마찬가지였다. 1시간 정도의 거리였기에 수유를 하고 카시트에 태우고 출발했다. 배도 부르고 좋아하는 장난감도 있고 아이는 기분이 좋은지 카시트에서도 울지 않고 잘 버텨주었다. 그렇게 도착한 시댁. 장소가 바뀌고 낯선 환경이라 느꼈는지 아니면 카시트에 오래 앉아 있던 게 힘들었는지 아이가 울기 시작했다. 아이는 뭐 항상 우니까 남편과 나는 그러려니 했다. 기저귀를 갈면서 달래주려 하는데 어머니가 “야, 얘 배고픈 거 아니냐?”라고 물으셨다. “집에서 먹이고 와서 아직 먹일 때가 아니에요.”라고 대답했다.

오랜만에 아이를 보셨으니 얼마나 손주를 안아보고 싶으셨을까. 어머니는 기저귀를 다간 아이를 얼른 데려가 안으셨다.

그런데 하필 우는 아이를 달래시면서 한다는 말씀이


“왜 울어? 누가 그랬어? 어이구 엄마가 밥도 안 줘! 배고픈데 네 엄마가 밥도 안 주지?”


아니, 방금 먹고 나와서 배고프지 않을 거라는 말씀은 안 들리셨나? 아이가 1시간마다 먹는 갓 태어난 신생아도 아니고 이제 수유 텀이 세네 시간으로 늘어난 아이가 벌써 배고플 리가 있을까. 엄마인 내가 젖만 먹는 아이를 굶기기라도 할까.

일단 내 이야기를 듣고 아직 먹일 때가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여주지 않으셔서 답답했다. 그리고 아이에게 엄마가 밥도 제대로 안주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달래는 것도 화가 났다.

남편이 옆에서 “아니야, 먹을 때 아니야.”라고 한마디 거들어 주었는데 그다음 말이 더 가관이었다.

“그럼 왜 이렇게 울어? 니 젖이 잘 안 나오는 거 아니야?”

모유 수유하는 사람들은 알 거다. 나의 젖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이 극도로 예민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나름 여러 고충을 극복하며 모유 수유하고 있는 나에게 젖이 안 나온다느니 젖의 영양이 부족하다느니 등의 소리는 피가 거꾸로 솟을 만큼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말이었다. 실제로 양이 부족할 때 속상한 엄마들이 매우 많기에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그러나 나는 그런 경우도 아니었고 그랬다면 가녀렸던 저 아이가 토실토실 살이 오를 수 있었겠는가.

그래서 우스갯소리를 섞어 “마사지받으러 갔더니 저는 그릇은 작은데 양이 넘친대요.” 하고 대꾸하고 말았다.

놀라운 건 저런 식의 화법이 아이가 커서도 이어졌다는 점이다. 내가 복직 후 시어머니께서 아이를 봐주시기로 하여 아침 출근 전 우리 집으로 오셨다. 내가 출근 준비를 하면 아이는 항상 일찍 일어나서 어머니도 새벽같이 일어나서 오셔야 했다. 일찍 잠이 깬 아이는 내가 집을 나설 때 즈음에는 배가 고파진다. 그래서 내 아침은 잘 못 챙겨 먹어도 아이의 아침을 늘 차려주어야만 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같이 나와 같이 기상하여 1시간을 놀았던 아이는 유독 많이 배고프다고 하였다. 어머니께 반찬과 국을 말씀드리며 이거 저거 챙겨달라고 말하는데 아이가 “‘엄마 배고파!!”하고 보채는 것이다. 그러자 어머니께서 아이에게 정말 어이없는 질문들을 하셨다.

“우리 아기 배고파? 어제 엄마가 밥 안 줬어? 네 엄마가 밥을 조금 줬나 보다 아침부터 배고프게”

내가 평소에 아이의 밥을 잘 안차려 주는 엄마라면 정말 뼈 때리는 한마디였을 것이다. 아이 밥 잘 못 챙기는 며느리 찔리라고 하시는 말씀이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아이 먹는 것엔 철저하고도 충실하게 준비하는 엄마였기에 황당하기 그지없었다.

그게 무슨 헛소리예요? 한창 크는 아이가 허기진 거지 저녁밥 안 먹인다는 소리는 왜 하시는 거예요? 하고 소리치고 싶었지만 하지 못했다. 나는 그 소리를 뒤로하고 출근길에 오르기 바빴다. 어머니와 나도 쾅 닫힌 현관문만큼이나 굳게 닫히는 듯했다. 며느리 속 긁는 소리 하시는 데 아주 선수이시다. 그냥 미운 며느리라 그렇게밖에 말이 안 나오시는 건지 아니면 의도를 가지고 하려는 망언인지 모르겠다. 내가 없는 동안 아이에게 얼마나 엄마 흉을 볼지 불안해지기까지 했다. 그러나 어쩌나. 나는 출근해야 하는 을 며느리이고 아이를 봐주실 분은 갑 어머니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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