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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5. 2023

어머니는 무엇을 하고 싶어요?

최진석 교수의 '버릇없는 인문학'을 읽는다. 「인간이 그리는 무늬」는 개인의 욕망이 우선이고 중심이고 중요하다는 말씀이다. 우리가 질서라고 생각하여 가르치고 강요한 이념을 버리고 '나' 중심으로 살라는 말씀이다. 去彼取! 이상을 취하지 말고 일상에 몰두하라. 먼 보편적 가치보다 가까운 생명력을 마음껏 발휘하라는 노자의 말씀이다.


나는 어머니가 만든 이미지를 따라 좋은 딸로 살려고 노력했다. 나의 욕망보다 어머니의 시선이 내 삶의 기준이었다. 나를 살림 밑천 맏딸로 살도록 길들인 어머니에게 순종하면서도 늘 불퉁거렸다. 어머니에게 억울한 감정이 컸다. 억울해서 어머니에게 대놓고 상처를 주었다. 상처를 주고 돌아서면 미안하고 공격하면서도 '이게 아닌데'라 생각하지만 멈추어지지 않았다.


나의 욕망과 본능을 누른 말은 '살림 밑천 맏딸, 교사, 엄마'이었다. '가족'과 '나' 사이에서 갈등하고 회의하던 나는 '우리에서 벗어나라'는 말에 공감한다. 은퇴자가 되어 '우리 가족'과 '교사'라는 울타리를 조금 벗겨낸다. 책임과 욕망 사이, 타인의 시선과 나의 본능 사이에서 고민했지만 고민의 끝은 언제나 책임과 시선이었다. 책임이나 시선을 의식하기보다 나의 욕망을 따라 자유롭게 살라는 최 교수를 진작 읽었더라도 나는 용기 내지 못했을 것이다. 60여 년 동안 나를 가둔 '우리' 울타리를 이제야 조금 걷어낸다. 걷어내니 우리 울타리가 더 잘 보인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는 이제 내 공격을 감당하지 못한다. 녹아버린 묵은지처럼 자양분이 죽죽 빠지는 어머니를 보며 내 억울함은 고개를 숙인다. 진작 버렸어야 할 감정이 슬슬 꼬리를 내린다. 가슴 짠한 시대를 달려온 주자를 할퀴고 긁은 짓이 미안하다. 힘 빠진 수탉처럼 물어본다. "우리 어머니, 지금 무엇을 하고 싶어요?" 가는귀먹은 어머니 답하신다. "머라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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