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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는 잘하나

할머니에게는 팡도르가 숙성할 시간이 필요하다

by 송명옥

<어느 할머니 이야기>, '늘 그렇지만 그 어느 날도 다른 날과 같지 않다'며 서두르지 않는 캐나다 어느 할머니. <할머니의 뜰에서>, 비 오는 날이면 지렁이를 주워 할머니 뜰의 텃밭에 내려 주는 캐나다 바바. <할머니의 팡도르>, '하룻밤 숙성시킨 반죽에 버터를 바르면 팡도르의 풍미가 살아난다'며 사자를 기다리게 하는 이탈리아 할머니. <이름 짓기 좋아하는 할머니>, 친구들과 사별하는 것이 싫어 사물에 사람 이름을 지어가며 살다가 유기견에게 품을 여는 미국 할머니.


우리 할머니 이야기도 있다. <할머니의 여름휴가>, <할머니 엄마>, <할머니 등대>, <자개장 할머니>. 우리 할머니들의 이야기들은 따뜻하고 재미있고 가족적이다. 우리 할아버지 이야기는 <여행 가는 날>이 압권이다. 할아버지는 배낭에 준비물을 챙겨 '나는 그리운 사람들을 만나러 가는 거야', '남겨진 사람들이 슬퍼할까 봐 미안하다'며 태연하게 저승사자를 따라 떠난다.


투석을 시작한 지 석 달째, 어머니는 걸음이 점점 느려지고 자동차를 타고 내리는 동작도 굼뜬다. 가끔 말도 막힌다. 웃음기가 사라진 얼굴로 투석하러 갈 때는 늘 짜증스러워한다. 환자가 짜증내면 그러려니 하면서도 혼잣말로 어머니를 뒷담화한다. 가는귀가 먹은 어머니에게 안 들릴 소리로 쫑알댄다. 간병하는 나도 힘들지만 본인이 가장 고통스러울 텐데.


"니는 잘했나?" 돌아보면 나는 잘못한 것이 많다. 내가 잘못한 것들을 다 기억할 수 없다. 나에게 가족에게 친구에게, 교사로서 학생들에게 잘못을 저지르고 모르는 경우도 있다. 오늘 어머니의 투석에 동반한 보호자로서 어머니에게 짜증을 낸다. 윤기 잃은 털도 조금 남은 구순 어머니에게 무슨 여력이 남아 있다고 짜증인지. 팡도르 반죽이 숙성할 시간이 할머니에게 필요하다고 그림책을 보며 고개를 끄덕이던 내가 아닌가. 돌아서서 눈물을 감추며 나에게 묻는다, "니는 잘했나? 니는 잘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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