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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Aug 26. 2023

어머니의 냄비

팔순을 훌쩍 넘긴 내 어머니, 아직도 부엌을 잡고 계신다. 명절과 아버지 기제사도 주도하신다. 며느리도 딸도 멀리 살면서 보면 대수롭지 않고 가끔 보면 별일도 아니다. 어머니의 부엌일을 당연하게 여긴다. 오히려 가끔 오는 딸은 주절주절 잔소리한다. 어머니 표정이 굳어지더니 입을 다문다. 바른말하는데 왜 싫어하느냐며 내 표정도 일그러지고.


장마가 오기 전에 어머니의 부엌을 청소한다. 어머니보다 능숙하지 못한 솜씨로 야금야금 시작한다. 튀김냄비 하나가 수상하다. 냄비 바깥쪽에 기름때가 덕지덕지 붙어 있다. 당신의 살림을 건들면 싫어할 것 같아 눈치껏 닦는다. 내 기분이 시원할 때까지 닦고 또 닦는다.


어머니 냄비를 힘주어 닦으니 내 냄비를 닦던 어머니가 떠오른다. 가끔 들러서 냉장고며 냄비들을 닦던 어머니에게 젊은 나는 짜증 내었다. 게으른 삶이 들추어지니 창피하고 왜 힘들여 냄비를 닦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땀 흘리며 팔 아프도록 씻고 닦는 어머니에게 '내 살림에 간섭하지 말라.' '좀 지저분하면 어때.'고 젊은 나는 소리쳤다. 그때 어머니에게 했어야 할 말을 지금 독백한다. "고마웠습니다." 그리고 주방은 꽉 잡고 계시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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