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반지 너 가져라."
어머니가 진주 반지를 내민다. 당신이 가장 자랑하는 반지이다. 빛깔이 누르스름하고 알도 제법 굵다. 넓적한 다이아몬드로 장식된 심플한 디자인이다. 막내인 어머니가 큰외삼촌에게 받은 선물이다.
처음부터 귀해 보이던 반지이다. 30여 년 흐르는 동안 보증서가 없어지고 상처도 두 군데나 생겼다. 늘이려고 금은방에 갔다가 늘이지 못하고 돌아온 어머니의 반지는 내게 새끼손가락에나 들어간다. 낄 수 없는 반지를 소중히 받는다. 외삼촌과 어머니, 남매의 사연도 안고 온다.
어머니의 약 봉투가 많아지고 종류도 늘어난다. 음식마다 달다, 짜다, 맛없다 투덜댄다. 카멜레온 딸이 저녁 한 끼 차리는 횟수가 늘어난다. 솜씨 없는 한 끼에 설거지를 마치면 늘 '고맙다'며 합장한다. 미수米壽의 셈법이다.
어머니는 가방끈이 짧지만 어머니 덕분에 나는 가방끈이 길다. 어머니의 가방끈이 짧다고 함부로 대했다면 정중히 사죄한다. 내 어머니가 卒壽를 바라본다. 수많은 삶들과 이어진 어머니의 과거를 존중한다. 어머니의 여명이 짧다고 누가 함부로 말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