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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Oct 06. 2023

隱穴 은혈

어머니는 자개 화장대를 쓴다. 50년이 넘은 좌식 화장대이다. 유리 거울은 닦아도 깨끗하지 않고 서랍도 삐꺽거린다. 침대를 들이면서 바꾸자고 해도 막무가내이다. 버리지 않는 노모의 습관을 이길 수 없다. 어머니의 습관을 바꾸려면 서로 언성이 높아지고 감정만 상한다.


어머니는 음식물도 쉽게 버리지 못하고 냉동실을 맹신한다. 냉동실은 검은 비닐봉지와 신문에 꽁꽁 싼 먹거리들이 늘 가득하다. 보관 용기를 갖다 드려도 무용지물이다. 신문으로 싸고 비닐봉지로 묶어야 직성이 풀린다.  '지저분하다, 어렵던 시절의 습관이다'라고 막말을 해도 통하지 않는다. 어머니 해묵은 습관은 손잡이가 숨겨진 은혈 같다.


추석 아래, 어머니는 아껴 먹던 냉동 홍시를 먹고 탈이 났다. 어머니가 입원한 사이 어머니의 살림을 뒤져 본다. 구석구석에 비닐봉지, 플라스틱 용기들이 가득하다. 쓰지 않는 쓰레기통에 통장들이 숨겨져 있다. 만기가 된 통장들이 수북하다. 버릴 것과 지닐 을 구분하지 못하는지 어머니의 역사로 생각하는지 모르겠다. 퇴원해 돌아오면 내가 버린 물건들을 찾느라 스트레스를 받으리라.


젊은 내 살림살이는 두서없었다. 지저분한 살림이 드러나는 것이 부끄러워 어머니를 말리던 시절이었다. 젊은 어머니는 서툰 내 살림을 소리 없이 정돈했다. '출근하느라 고생한다'며 딸을 이해하던 어머니였다. 구순을 바라보는 어머니를 탓할 자격이 나에게는 없다. 어머니의 은혈 같은 습관을 내가 평가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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