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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송명옥 Oct 26. 2023

해콩의 계절

"커피콩으로 내렸습니다." 중년의 바리스타가 으슥한다. 커피콩! 말도 신선하다. 들뜬 기분으로 한 모금 머금는다. 뇌가 확실히 신선하다고 하고 코도 더 향기롭다고 한다. 무겁게 로스팅한 커피가 아니면 세세히 구분하지 못하는 혀도 신선하다 한다. 200g 한 봉지를 집는다.


"할머니와 커피 놀이할까?"  손자는 표정이 달라진다. "커피 놀이?" 자동차나 블록으로 놀듯 커피로 같이 논다. 바리스타 조수와 배꼽 인사를 나누고 시작한다. 콩이 갈리고, 가루에서 커피 향이 번지고, 서버에서 커피액이 똑똑 떨어진다. 조수는 호기심으로 시작한 놀이를 반복하니 익숙해진 듯하다. 콩을 스푼으로 그라인드에 담고, 필터를 접어 서버에 올리고, 입이 긴 주전자로 커피를 내린다. 다음 주에 우리는 해콩으로 커피 놀이한다.


"오늘 입원하시지요." 의사 선생님이 바로 입원하란다. 컴퓨터로 검사 결과를 보여주면서 신장이 점점 나빠지고 있단다. 오후에 온천에 가려는 어머니에게 물어보지 않고 입원을 결정한다. 퇴원하고 2주일 만에 또 입원한다. 미수의 어머니가 초록색 코트를 벗고 환자복으로 갈아입는다. 오늘은 병실 밖으로 나오지 않고 조심해서 가라는 말도 안 한다. 눈을 감고 있다.


해콩이 무슨 소용이야. 커피 놀이도 뒷전이다. 내 어머니가 또 입원했는데, 가을볕은 왜 이리 맑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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