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아버지를 사랑하는가

아버지를 향한 나의 갈망

by 최혜숙


한참을 생각하며 망설이게 된 질문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에 대한 질문이었다. 선뜻 대답하기 힘든 순간이었다.


오랜 시간 아버지를 미워하며 살아왔다. 이기적이고, 아내에게도 다섯 자녀에게도 사랑을 주지 않는 차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의 삶에서 미덕도 분명 있었다. 그는 매우 성실했고, 고지식했으며, 평생 가족과 형제를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그 삶이 결국 아버지를 아버지답게 만든 것이 아니었을까.


아버지의 'Real Want', 진정 바랐던 삶은 무엇이었을까.

현실적으로 이루기 어려운 꿈이었을지 모르겠다. 겉으로는 책임감 강한 장남이자 현실적인 아버지로 보였던 아버지에게도 내면 깊숙이 예술에 대한 열정과 감각이 자리 잡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비로소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충청도 산골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을 꿈꾸셨다. 이미 대학 입학 허가를 받았으나 등록금을 내지 못해 입학을 포기하셔야 했다. 20살, 그는 장가를 갔다. 당시 19살의 엄마에게. 지금 생각하면 놀랄 일이지만, 1938년생, 39년생에게는 가능했던 결혼이었다. 아버지는 아직 너무 어린 나이에 가장이 되어야 했고, 그 시절의 가난은 온 가족을 힘들게 했을 것이다.


집에서 키우던 소를 팔아 가족의 끼니를 때워야 했던 순간, 장터에서 돌아오는 아버지의 손에는 돈이나 쌀이 아닌 '카메라'였다고 엄마는 기억하셨다. 그 일화는 지금도 나에게 충격이다. 그 시대의 가난과 사회적 관습 속에서도 자신의 감성을 놓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의 흔적처럼 느껴졌다. 내가 성장하면서, 나의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셨던 아버지의 모습이나 오랜 시간 소리 없이 시를 써오신 그 흔적들은 아버지가 현실에 묻혀 빛을 보지 못한 내면의 자취 같다.


그렇게 아버지의 모습은 내가 어릴 때 겪었던 억눌림과 갈망과 연결된다. 어쩌면 지금 나의 다양한 활동에 대한 열망은 아버지께서 미처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펼쳐가는 과정일지도 모른다. 아버지께서 현실적 책임을 내려놓고 자유롭게 살 수 있었다면, 아마 한적한 들판에서 카메라로 풍경을 찍거나, 시와 그림으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 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미술을 사랑하고 글을 쓰며 서예를 하는 이유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을지도. 그것은 아버지로부터 이어진 선물일지도 모르겠다. 만약 아버지께 내가 간절히 바라는 'Real Want'를 선물로 드릴 수 있다면, 아버지는 모든 책임을 내려놓고 그림을 그리고 사진을 찍으며 시를 쓰며 온전히 자신의 열망을 펼치는 삶을 살지 않았을까. 아버지가 현실적인 책임 때문에 자신의 열망을 억누른 것처럼, 나도 '해야만 하는 일'과 '하고 싶은 일' 사이에서 갈등하며 살아왔는지 모른다. 그 갈등은 어쩌면 내 안에 내재된 지배적 상대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아버지가 충청도 산골에서 카메라를 들고 자연을 사진으로 남기는 모습, 스케치북에 그림을 그리고 시를 쓰며 자신의 내면을 풀어내는 모습을 선물로 드리고 싶다. 이제 곧 90세를 맞이할 나의 아버지. 아버지의 열망이 내 안에 남겨준 것은 무엇일까.


portrait-5064040_1280.jpg 출처: 픽사베이




keyword
작가의 이전글건강한 관계로의 첫걸음: 관계 속 마음을 탐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