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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essed To Bless Oct 30. 2022

우리 엄마에 관한 잔상 1

엄마의 손만두

지난 토요일, 방학을 마친 큰 아들을 보스턴에 내려주러 다녀오면서 땅만 밟고 왔는데도 좋았다. 20여 년 전 처음 그곳으로 이사했을 때는 참 낯설고 물가는 비싸고 추운 곳이라고만 생각했었는데 이제는 보스턴의 전부가 그리울 정도다. 물론 사람들이 그중 으뜸이다. 한 사람 한 사람 보고 싶은 얼굴들이 떠오르면서 우리 가족의 20년이 넘는 많은 추억이 새록새록해진다.  


두 주전에 아들을 데리러 왔을 때는 30도 정도로 여전히 녹지 않은 눈과 꽁꽁 언 호수도 보이고 그랬었는데 그때와는 사뭇 다른 따스한 봄기운이 보스턴에 가득했다. 차창을 통해 온몸 가득히 퍼져오는 따스한 봄햇살의 기운을 느끼며 마치 오랜 시간 운전하느라 수고한다고 해님이 위로해 주는 것만 같았다.  


그날 밤, 펜실베이니아에 새집으로 돌아오니 두 아이들이 격하게(!) 환영하며 우리를 반겨주었다. 그리곤 대뜸 작은 딸이자 셋째인 송희가 이렇게 말을 한다. 


"엄마, 진심으로 존경해요~!" 


속으로는, "갑자기??" 했지만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자기 혼자 막내 연희를 챙기며 이틀 동안 밥 세끼 차리는 게 이렇게 힘들 일인 줄 몰랐다며 엄마를 새삼(??) 존경하게 됐다고 너스레를 떠는 사랑스러운 작은딸의 애교가 싫지는 않았다. 처음으로 시어머님의 도움 없이 고등학생인 송희와 막내만 두고 다녀온 것이어서 염려가 되긴 했었다. 늘 느끼는 거지만 아이들은 맡겨주기만 하면 생각보다 잘 해내는 편이고 또 나를 존경한다고까지 하니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출타였다고 생각했다. 


최근 들어 연로하신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님을 돌봐드리느라 한나절이나 하루이틀 집을 비워야 할 때, 가족들 식사, 간식 등을 이것저것 준비해 둔다. 할 줄 모른다 생각하니 더 마음이 쓰여 가능한 간편하고 다양하게 먹을 수 있게 준비해 두려 하는데 그때마다 내가 해 둔 음식이 너무 많다는 불평을 듣기도 한다.  덕분에 아빠가 피자도 사줄 수 있고 외식도 할 수 있는데 엄마가 음식을 많이 해 놓는 바람에 그렇게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한국 드라마 응답하라에 나오는 라미란 씨가 엄마랑 닮았다며 칭찬인지 불평인지... 를 한다.  (일단 연예인 닳았다는 소리는 좋다. 라미란 씨도 물론 좋아하고)


듣고 보니 나도 어렸을 때 그렇게 똑같이 엄마를 원망했던 생각이 났다. 우리 삼 남매가 어릴 적에 엄마는 늘 집에서 음식을 하셨다. 고기도 좋아하셨지만 생선을 좋아하시는 아빠를 위해 매 세끼를 정성스럽게 차려 올린 엄마의 수고는 참 대단했다. 아빠의 밥상에는 신선한 나물이 빠지지 않았고 출장이 잦으셨던 아빠가 밤늦게 귀가하실 때면 귀찮을 법하실 텐데도 그때까지 저녁을 못 드신 아빠를 위해 정성스레 늦은 저녁상을 준비하는 것을 불평하신 적이 없으셨다.  


아들 못지않게 먹성 좋은 딸까지, 삼 남매 도시락에 종종 특별한 간식까지, 집안에 잔칫집 같은 기름 냄새 가득하도록 우리가 좋아하는 튀김도 자주 해주셨다.  그랬던 엄마를 생각하면 내가 하는 건 아무것도 아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면 아빠 혼자 버셔서 강남에서 세 아이 키우시려면 얼마나 절약하셨어야 했을지 지금은 짐작이 가기도 한다. 그러나 그때는 종종 외식하러 나가자고 아빠가 말씀하실 때마다 엄마는 그냥 집에서 먹자고 하시며 분주하게 손을 움직이셨다. 그래서 생각보다 우리 가족은 외식을 잘 못했고 난 그게 큰 불만이었다.   


내가 강남으로 이사 온 첫 해, 학급 친구들의 생일에 초대를 받았었고, 그때마다 생전 처음 먹어봤던 마카로니 샐러드나 유난히 화려하고 맛났던 생크림 케이크, 수제 햄버거와 초코칩 쿠기에 이어 널따란 친구들의 아파트 등에 관한 경험담을 엄마에게 늘어놓곤 했었다. 내 생일인 9월이 다가오자 엄마는 친구들을 불러 집에서 생일파티를 하자고 말씀하셨다. 나는 우리 집은 넓은 거실이 있는 것도 아니고 더구나 그때는 가스레인지도 없을 때여서 무리일 것 같아 썩 내키지 않았었지만 엄마의 설득에 그러겠다고 했다. 


내 생일날, 방과 후에 아이들을 데리고 집으로 왔다. 엄마는 이미 안방에다 커다란 자개상을 펴놓으시고는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과자들과 음료수를 차려놓고 반 친구들을 반겨 주셨다. 그리고는 손수 만드신 정성스러운 만두를 부엌 한쪽 구석에 있는 연탄아궁이에서 땀을 뻘뻘 흘리시며 쉴 새 없이 찌고, 구워서는 열 명 남직한 학급 친구들을 먹여주시느라 쉴 새 없이 움직이셨다. 친구들은 또 얼마나 많이 먹던지… 정말 끊임없이 맛있게 먹어 대는 친구들을 보고 있자니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다른 집 생일 파티에서는 먹어보지 못한 우리 엄마의 손만두, 그것도 수십 접 시를. 내가 학교에 있을 동안 혼자서 그것을 만드시느라 얼마나 고생하셨을까... 만두피까지 손수 빚어 속을 꽉꽉 채운 엄마표 만두는 우리 가족의 최애 음식이니 그 맛은 말해 뭐 하랴. 그러나 그날 밤 엄마는 잠을 잘 이루지 못하시는 것 같았다. 애써 감추려고 하셨지만 끙끙대시는 소리가 어린 내 귀에 만큼은 똑똑하게 들렸다. 그리고 그건 엄마의 사랑이 나에게 이렇게 말하는 소리로 들렸다. 


"네 생일, 행복했니? 네가 행복하면 엄마는 이깟것쯤 얼마든지 한다. 많이 사랑한다 우리 딸~!"


그때 나는 엄마의 신음소리를 들으며 그 많은 만두를 혼자 빚으시느라 고생하셨을 엄마 생각에 많이 죄송했지만 우리 엄마가 무척 자랑스러웠고 참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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