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 한 벌 사지 못한 엄마와의 봄쇼핑
21년의 보스턴 생활을 접고 남편의 직장을 따라 펜실베이니아주로 이사 온 지도 어느새 2년이 훨씬 넘었다. 대학 졸업하자마자 결혼하고, 결혼한 지 2년 만에 보스턴으로 이사 가서 일 년에 고작 한 두 번 명절 때면 찾아왔던 친정나들이라고 해도 같은 주에 계셨던 시댁을 먼저 챙기게 되고, 보고 싶었던 친구들을 만나다 보면 부모님은 늘 뒷전이었다. 또 머무는 시간이 짧아서 늘 아쉬웠다. 내손으로 뭐라도 해드리고 싶어 부엌을 기웃거리면 엄마는 당신이 할 테니 걱정 말고 좀 쉬라고, 친구들도 더 만나고 다니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부모님께 효도 한번 해드리지 못한 게 언제부터인가 바위덩이처럼 내 마음에 들어와 앉아있다. 나에게는 새로운 곳에서의 적응이 여전히 벅찬 일 이긴 하지만 연로하신 부모님이 사시는 메릴랜드주와 좀 더 가까워진 것은 감사한 일이었다.
마침 공립초등학교에서 교생 실습 중인 큰아이가 방학을 맞아 집에 온 덕분에 막내의 라이드를 맡겨놓고 식구들의 배려로 이틀씩이나 혼자 친정에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호사를 누리다 올 수 있었다. 오랜만에 부모님을 볼 수 있는 기회에 감사는 됐지만 지난번보다 그만큼 더 연로해 보이시는 두 분 모습에 혼자 마음속으로 울컥했다.
오빠에게 받은 신용카드로 당신이랑 나랑 봄옷 한번 사 입자고 호기를(?!) 부리시며 아빠 점심을 차려드리고는 오랜만에 두 모녀가 쇼핑몰(Mall)을 찾았다. 그날 아침, 엄마가 쇼핑가자 했단 말에 동생도 모아 두었던 현금을 두둑이 챙겨주었다. 이래저래 부자가 된 마음으로 엄마를 모시러 갔다.(형제들 등쳐먹는 인간 아님 주의)
주중이라 한산해 보이던 이곳저곳의 상점들을 지나고 엄마가 들어가 보자시는 옷가게들을 다니면서 봄 냄새가 물씬 나는 옷들을 훑어봤다. 오른팔과 어깨를 쓸 수 없게 되신 지가 벌써 여러 해인 친정엄마가 옷을 갈아입으시는 것을 도와드리려다 보게 된 엄마의 벗은 몸. 근육이 죄다 빠져버린 그녀의 앙상한 등과 어깨, 팔, 다리와 손등을 보는 순간... 흠칫 놀랐다.
부드러운 봄 블라우스가 예뻐 보이셔서 입어 보셨을 텐데 거울에 비친 당신 모습을 보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에게는 별로다. 젊은 네가 입어봐. 네가 입으면 예쁠 것 같다.."
시며 한사코 나에게 옷을 사서 입히고 싶으신 엄마마음이 훤하게 내비친 하늘거리는 봄옷처럼 다 보였다. 옷을 입으시는 것도, 그 옷들을 다시 벗으시는 것도 힘겨워 보이시는 엄마는 고작 한 두벌을 입어 보시더니 내가 배고플까 봐 서둘러 나가자고 하셨다. 그러나 상표를 여러 번 들여다보시며 비싼 옷 가격 때문에 내려놓으신다는 것을 나는 짐짓 알고 있다. 오빠랑 동생이 힘들게 고생하며 번 돈을 함부로(?) 쓰실 수 없으신 속내를 숨기신 채 보기보단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만 둘러대시는 엄마의 어설픈 연기에 왠지 모르게 마음이 서늘해져 왔다.
얼른 돈 많이 벌어서 비싼 옷, (예쁜 거만큼 무조건 비싼 옷 ) 내 돈 내산 해드리고 싶은 마음을 속으로 쟁여두었다.(이 생각을 무려 30년이 넘게 하고 있다. ㅜㅠ) 엄마는 그런 내 속마음을 아시는지 모르시는지 딸 잘(??) 둔 덕분에 옷도 입혀주고 운전도 해주고 좋은 친구랑 함께인 것처럼 편하게 쇼핑 잘~했다시며 재미있었다고 소녀처럼 좋아라 하셨다.
나는 그렇게 행복해하시는 엄마 옆모습을 훔쳐보며 웬일인지 눈물이 나는 걸 꾹 참아야 했다. 생각해 보면 이게 뭐라고... 나 사는 거 바쁘다고 엄마에게 이런 평범한 시간조차 함께 해드리지 못했던 자신이 미워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할 수만 있다면 이제라도 노모에게 그 친구 같은 딸이 돼드리고 싶다는 다짐을 하며 노을처럼 쓸쓸해진 마음으로 친정을 떠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