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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lessed To Bless Oct 30. 2022

우리 엄마에 관한 잔상 2

엄마가 보고 싶은 엄마

친정엄마의 혈액암 전문의와 예약이 있기도 했지만 큰 아이의 오래된 차가 state inspection에 통과를 못해서 겸사겸사 다시 메릴랜드를 다녀와야 했다. 차에 문제가 생기는 건 달갑지 않은 일이나 솜씨 좋은 오빠가 가까이 있어 고쳐주니 수리비 걱정이 없는 게 감사하고, 덕분에 또 부모님을 뵐 수 있어서 그것 또한 좋았다. 


그날 엄마는 외할머니 산소에 가시려고 꽃을 준비해 놓으셨고 나는 동행을 하게 되었다.  묘지에 도착했을 때 마침 저만치서 누군가의 장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코로나로 인한 제약 때문에 검은 옷을 입은 몇 명 되지 않은 사람들만이 장지를 둘러서서 애도하고 있었다. 떨구어진 고개와 어깨가 들썩거리는 그들의 뒷모습을 지켜보면서 죽음은 언제나 슬프고 아프다는 생각을 했다. 정말 오랜만에 찾은 할머니 묘지 앞에 서서 그렇게 죽음에 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저기 잡초를 뽑고 주변을 정리하고 나신 엄마가 언제나처럼 기도를 시작하셨다.  


마치 얼마전에 할머니를 만난 사람처럼 할머니에게 잘 있었느냐고, 보고 싶었다고.. 말씀하시다가, 기도하시다가... 는... 팔순을 넘기신 나의 어머니가 당신의 엄마를 부르며 울기 시작했다. 잠시 눈을 떠 그런 엄마를 한참이나 지켜보았다. 마치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처럼 흐느끼고 있는 여리고 작은 체구의 '우리 엄마'가 앉아 계셨다. 처음 보는 그런 엄마 모습이 낯설기도 했다. 문득 심순덕 님의 시가 떠올랐다.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하루 종일 밭에서 죽어라 밖에서 일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찬밥 한 덩이로 대충 부뚜막에 앉아

점심을 때워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한겨울 냇물에서 맨손으로

빨래를 방망이질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배부르다, 생각 없다,

식구들 다 먹이고 굶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발 뒤꿈치 다 해져 이불이 소리를 내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손톱이 깎을 수조차 없이 닳고 문드러져도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아버지가 화내고

자식이 속 썩여도 끄떡없는

엄마는 그래도 되는 줄 알았습니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외할머니 보고 싶다

그것이 그저 넑두리인줄만

한밤중 자다 깨어 방구석에서 한없이 소리 죽여 울던 엄마를 본 후 론... 

아!.. 

엄마는 그러면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도 엄마가 보고 싶을 수 있는 건데... 아니 보고 싶을 텐데.. 나는 그걸 몰랐었다.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였고 

엄마는 언제나 강인하고, 

엄마는 무엇이든 잘 참고, 

엄마는 언제나

엄마로만 살았을 거라고 생각했던, 


엄마가 된 지금의 내가, 엄마가 그리워서 그렇게 울고 있는 팔순이 넘은 우리 엄마를 어쩌지 못하는 안쓰러움으로 꼭 안아드리기만 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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