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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영 Aug 18. 2024

대화의 상대 - 1편

단편집

뉴스를 보니 오늘도 꽤나 더우려나 보다.

  5월에 이 정도니 7, 8월에는 얼마나 더 더울까, 오늘은 또 어떻게 지나가나 하는 생각을 하던 중, 무심코 바라본 창밖의 파란 하늘 풍경 사이로, 짝을 찾는 매미소리가 우렁차게 울리고 있었음을 이제야 알았다.
 그러고 보면 내가 어릴 적에 매미는 6~7월 정도에 땅 밖을 나와서 울었던 것 같은데...

  밖은 꽤 덥겠구나 싶지만, 병실이 생활터전이 된 나로서는 그리고, 옆에 누워있는 남편으로서는 땀 흘릴 일은 없으니 그나마 다행이라면 다행이랄까...

  남편이 혼수상태가 된 지 1년도 넘은 것 같다. 언제였었지? 사고가 난 날이?
  그날은 정말 생각하기도 싫지만, 시간이 흐르다 보니 몸과 마음은 지쳤어도 적응했는지 평범한 일상생활이 되어버린 것 같다.


  '당신은 알아? 이런 내 생활을?' 혼자서 묻는다.

  '난 그래도 당신이 언제 그랬냐는 듯 갑자기 깨어나서 둘이 즐겁게 이야기하고 투닥거리던 시절로 돌아가는 꿈을 꾸고 살아. 사실 그런 꿈을 꾸지 않으면 힘들고 지쳐서 미쳐버릴 거 같거든...'

  '평안해 보이는 당신 얼굴을 보면, 당신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싶기도 하고.... 나는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나 싶기도 하고...'

멍하니 창밖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던진 혼잣말에 흠칫 놀라고는

  '아냐... 이런 생각은 버려야지!'

  '언젠가 조만간 당신이 깨어나서는 민서야!라고 부르고는 그동안 꿈속에서 있었던 일들을, 그동안 나한테 해주던 이야기들을 듣게 될 거야... 꼭 말야... '

라고 다짐 아닌 다짐을 한다.




  누워있는 남편 옆에서 책을 읽고 있던 때에 간호사로부터 잠시 병동 간호실로 나와달라는 이야기를 듣고는 무슨 일인가 싶어 나가 봤다. 간호실에는 담당의사와 정장을 입고 있는 사람 두 명, 그리고 무슨 유니폼 같은 복장을 입은 사람 두 명이 서 있었다.

  "어...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아..네 보호자님, 오늘 체크해 보니 남편분 상태는 특이 사항은 없네요. 갑자기 불러서 놀라셨죠? 다름 아니라, 흠 무슨 이야기부터 시작할까요? 아... 여기 계신 분들은 [소울뎁(SoulDev)]에서 나오신 분들입니다. 혹시 들어보셨나요? [소울뎁]사 라고?"  오늘따라 의사 선생님이 조금 긴장한 듯 말한다.

 "아.. 아니다 일단 저기 휴게실에서 앉아서 이야기하시죠."

  병동의 복도를 따라가면 나오는 휴게실은 그나마 대화하기 좋은 장소다. 중환자들이 있는 병동이란 늘 그렇듯이 루틴에 따라 계속 오가는 간호사들로 번잡하기도 하고, 간혹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는지 시끄러운 소음이 오가기도 하는 그런 곳이기 때문이다.

  휴게실에서 내 옆에 유니폼을 입은 사람 2명이 앉고, 맞은편에 의사 선생님과 정장을 입은 사람 2명, 정확히 한 명은 40대의 남자였고, 한 명은 30대로 보이는 여자가 앉았다.
 의사 선생님으로부터 이야기를 듣고 힐끗 쳐다보니 유니폼에는 [SoulDev]라는 로고가 새겨져 있었다.

  '그래 [소울뎁]이라는 회사는 어디선가 들어본 것 같기는 한데, 무슨 회사길래 의사 선생님과 함께 나를 찾아왔을까?'

  잠깐 동안의 정적이 흐른 후, 의사 선생님이 말을 시작한다.

  "보호자님, 아까 말씀드리다가 끊어졌네요. 다름 아니라 보호자님을 뵙자고 한 이유는 보호자님께 좋은 소식을 알려드리려고 해서였습니다." 잠깐 숨을 들이켜더니, "여기 저랑 같이 오신 분들은 소울뎁사에서 나오셨어요."

  "아.... 네..."

  "소울뎁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뇌과학 분야에서 꽤나 유명한 기업이에요. 일반인 분들은 잘 모르실 수 있지만, 아마 의학분야나 기술 다루는 곳에서는 모두들 알 겁니다. 남편분께서 코마 상태 그러니까 혼수상태로 계신지가 11개월이 지났죠?"

  "네... 아마도. 그런가요? 1년 정도라고 생각했는데, 그렇네요 11개월 되었네요."

  "아시다시피 남편분의 상태는 신체 다른 부위는 이상이 없고, 뇌의 상태도 의학적으로는 이상이 없어요. 보통은 뇌의 심각한 손상에 기인합니다만... " 의사는 잠시 한 박자를 늦추고는

 "다시 아픈 기억을 상기시켜 드려 죄송합니다... 남편분은 지난 사고에서 오랜 시간 산소공급이 되지 않아서 뇌의 기능이 상실되신 것으로 판정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때 뇌의 특정 영역, 특히 의식과 관련된 회로... 아 복잡한 말씀드려 죄송합니다. 의식을 관할하는 부분이 손상되었거나, 기능을 잃었을 때 발생합니다."

 "네, 전에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 기억해요... "

 "아시다시피 남편분에 대해 면밀한 검사등을 통해 원인 확인을 시도했고, 약물 치료도 시도해 봤습니다만, 아직까지 차도는 없는 상태죠... 아마 보호자님도 많이 힘든 상태실 겁니다. "

  담당의사는 나를 바라보면서 이야기하다가, 이 부분에서 잠시 눈을 소울뎁에서 왔다는 사람들에게 돌리더니,

 "앗차, 여기 오신 분들 소개를 제대로 못했네요. 죄송합니다." 왼손으로 정장을 입은 남자를 가리키고는

 "이 분은 소울뎁의 뇌신경 커넥티비티 사업담당의 이민성 상무님입니다. 그리고 이 옆의 여성분은 같은 회사 소속의 변호사시구요. 보호자님 옆에 있는 두 분은 앞의 상무님과 같은 소속의 엔지니어 분들입니다. "

 "아... 네 안녕하세요? "

 "안녕하십니까? 소울뎁의 이민성이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임원이라고 하기엔 젊어 보이는 남성이 인사를 한다.

 "저희는 들어보셨는지 모르겠는데, 뇌신경 분야 그중에서도 뇌의 기억과 행동패턴 그리고 BMI 즉 Brain - Machine Interface라고 뇌와 컴퓨터를 연결해서 분석하고 상호 연결을 하는 분야를 담당하는 사업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사업을 총괄하는 임원이고, 옆의 두 분은 이 분야의 국내 최고 전문가들입니다. "

옆에 앉은 두 명이 꾸벅 나에게 목례를 한다.

 "좀 복잡하게 들리실 수 있겠습니다만, 좀 더 설명드리면 저희 소울뎁에서는 오랜 기간 뇌의 기억을 스캔해서 저장하는 분야를 추진해 왔어요. 물론 더 나아가 다른 쪽까지도 하고 있습니다만, 그건 차후 설명드리고, 뇌의 기억을 저장한다는 이야기는 생각하시는 것처럼..... "

 "잠깐만요, 뇌의 기억을 저장한다고 하신 것, 저희 남편의 기억을 저장하는 실험을 하신다는 거예요? "

나도 모르게 갑자기 흥분해서는 언성이 높아졌다.

 "아... 네 잠시 흥분 가라앉히시고 마저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아... 이상무님, 제가 말씀드려 볼게요. " 의사가 상무라는 사람의 말을 가로채고는

 "보호자님, 실험은 아니고요, 좀 길게 설명드리면 최근 전 세계적으로 뇌과학 분야 중에서 가장 활발하게 개발되었고,  실용화단계까지 온 기술 중 하나인데, 뇌의 기억을 다른 장치, 쉽게 생각하시면 컴퓨터에 저장을 하는 기술이 있어요. 물론 동물실험을 거쳐서 임상 중에서 3상 단계까지 와 있습니다. 3상 단계 아시죠? 거의 완성단계에 와있어요. 이 임상실험 중에서 사실 멀쩡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완성단계에 이르렀습니다. 앞에 있는 소울뎁사 외에도 글로벌 회사인 뉴럴커넥트에서 가장 앞서있고요, 우리나라에서는 소울뎁이 가장 앞서 있는데 뉴럴커넥트사와도 격차가 상당히 줄어든 상태입니다.

  이 분들이 저와 보호자님을 찾아온 이유는 좀 민감할 수 있지만, 앞에서 멀쩡한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완성단계에 이르렀다고 말씀드렸죠. 그렇지만 혼수상태 즉, 코마상태인 사람들을 대상으로는 아직 임상을 더 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위험하지 않아요. 이미 정상인 사람을 대상으로 3상까지 왔다는 것은 거의 다 되었다는 이야기거든요."


  "네 이해했는데요, 왜 갑자기 저를 찾아오신 거죠? "

  "남편분은 코마상태인 환자분들 중에서도 신체 조건이 굉장히 좋은 상태십니다. 의학적 소견으로 신체뿐 아니라 뇌도 거의 정상인에 가까워요. 나이도 비교적 젊은 30대 중반이시고요... 아... 죄송합니다. 젊은 나이에 의식을 잃으신 점을 상기시키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의미가 아니니 오해 마시고요..."

임원이라는 사람이 말을 이어받아 말한다.

  "사실 남편분을 대상으로 임상을 말씀드리려는 이유가... 흠... 보호자님께는 좀 외람될 수 있지만... 저희 소울뎁사는 아까 말씀드린 뇌 기억 저장기술을 통해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어요. 기업이니까 당연히 사업화를 추진하고 있습니다만... 남편분과 같은 사례를 대상으로 한 사업도 기획 중입니다. "

  "저희 남편과 같은 사례라뇨? "

  "남편분 뿐만 아니라, 국내에 코마상태로 계신 분들이 공식적인 통계는 아닙니다만 올해 기준으로 104명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환자분들의 상황과 사정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의학적인 의식이 없는 상태라 하더라도 기술적으로 코마상태인 분들의 의식을 기술적으로 돌아오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게 단순히 뇌의 기억을 저장하는 기술만 이용하는 것은 아니고요, 인공지능 기술과 결합해서 저장된 기억을 학습해서 사실상 환자의 의식을 사고 전의 상태와 동일하게 구현하는 것이 가능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시죠. 너무 혼란스럽네요. "

  "너무 기술적인 이야기지만 간단히 설명드리면... 흠.... 김책임, 김책임이 간략히 하는 거 잘하니까 설명 좀 해 드려 주겠어? "

내 옆에 앉은 김 책임이라는 사람이 주머니에서 스마트폰을 꺼내더니,

  "사모님, 인공지능 비서 기술 자주 쓰시죠? 사람처럼 말하는 거요?'

  "네 자주 쓰죠. 요즘 그거 없으면, 생활이 불편할 정도니 당연히 쓰죠.. 그런데요?"

  "네... 이 인공지능 비서는 사실 인터넷 사의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의 대화와 책, 자료 등의 데이터를 학습한 결과로 사람처럼 말하도록, 심지어는 감정도 있는 것처럼 말하잖아요? 카메라로 저를 보고는요... "

 "네, 맞아요. "

 "지금 말씀드리려는 것도 비슷합니다. 인공지능 비서가 사람처럼 말하는 거는 인터넷상의 수많은 사람들의 대화라던가, 자료, 책을 가지고 학습해서 일반적인 사람의 대화를 하는 것이고요, 남편분의 뇌에 있는 기억을 저장해서 학습하게 되면 그 인공지능 비서... 아니 그 인공지능은 이제 남편분의 과거와 기억을 바탕으로 대화할 수 있게 되는 거예요. 심지어는 그 상태에서 카메라와 스피커, 사람으로 치면 눈과 귀로 보고 듣는 것들을 추가로 실시간 학습하면서 대화가 가능해진다는 이야기입니다. "

김 책임이라는 사람 옆의 좀 더  젊은 엔지니어라는 사람이 끼어든다.

  "좀 이상하게 들리실 수 있겠지만, 남편분의 의식이 스마트폰이나, 다른 컴퓨터 장치로 이식된다고 보시면 됩니다. 육체는 다르지만요.... "

 어질어질해진다. 무슨 소리인지.... 한숨이 나오고 혈압이 오르는 것 같다. 고개를 소파로 젖힌다.
 육체는 병실에 있는데, 남편의 의식이 이식된다니... 이게 무슨 소리인가... 쓰러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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