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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섬세한노을 May 06. 2023

비오는 어린이날


텔레비전의 웅웅거리는 소리 밖으로 저멀리 아이들이 만들어내는 놀이터의 소리를 떠올릴 때면 누구나 언젠가의 추억이 떠오를지도.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가야 할 시간, 해가 지는 노을이 아쉬울 만큼 서운했던 기억. 엄마가 차려놓은 따뜻한 저녁을 기다리는 날도 있고, 혼자 외로이 집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 날도 있었다. 차리싸움에 치열하던 그네는 덩그러니 남아 자잘한 움직임으로 왔다 갔다 했고, 모래놀이를 하던 장난감 삽은 꼭 하나쯤 모래에 파묻혀 있었다. 


가족과 함께한 특별한 날의 저녁은 괜히 더 서운했다. 놀이공원에 다녀 온 주말이나, 어린이날 외식을 하고 돌아오거나, 오랜만에 가족이 모두 산에라도 다녀온 날의 저녁이면 엄마 아빠는 분주히 하루를 마무리하고 월요일을 준비했다. 어른이 된 이제는 이해할 수 있는 움직임이지만, 그땐 울적하기만 했다.어둑어둑 해지는 창밖을 보며 낮잠을 청해야 할 것 같은 고요함, 겨우 잠들었다 일어나면 가족들은 나와는 다른 하루로 돌아간 듯한 모습. 아까의 기분에 조금 더 허우적되면 안되는거야 엄마? 아빠는 또 눈감고 티비를 보네. 내 마음은 아직 동물원에 있는데.


그때의 서운함을 어른이 된 지금의 표현으로는 공허함 또는 헛헛함이라 할 수 있겠다. 해맑게 기쁘기만 한 어린이날이라면, 모두의 어린이들에게 그런 날이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람들과 시끌벅적 함께한 직후의 헛헛함을, 아이들은 누구보다 잘 느낀다. 적어도 나는 그랬다. 어른이 되며 그 공허함에 더 익숙해졌다.  선물상자는 열기 전 그 기대감을 가지고 있을 때 가장 행복한데. 혹시나 이 선물을 열고 실망하면 어쩌지?라는 작은 걱정과 함께, 그래도 설레는 마음으로 영원히 상자를 들고 있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올해의 어린이날, 전국엔 비가 내렸다. 우산없이 첨벙거리며 쏟아지는 비도 즐긴 나였는데, 어느덧 직장인이 된 나는 그저 평일에 맞이하는 공휴일의 달콤함과 비까지 오는 황홀한 무드에 커피를 내리고 향초를 켜고 반나절을 즐겼다. 우산을 쓰고 흥얼거리며 편의점에 가다가, 엄마 손을 꼭 붙잡고 실망한 표정으로 차에 올라타는 어린아이를 보았다. 참, 어린이날이지. 비가내리는구나. 속상했겠다, 속상하겠다-를 되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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