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문장_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라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勿施於人

by 검은 산

<논어> 위령공편에, '己所不欲勿施於人기소불욕물시어인'이라는 구절이 있다. 해석하자면 '내가 원하지 않는 것을 타인에게 하지 말라'라는 정도로 해석할 수 있다. 이 구절을 읽는 순간, 나는 <논어>가 가진 특별한 힘에 매료되었다.


한국은 관계성이 높은 나라이다. 한국인의 언어에 등장하는 '우리'라는 단어는 다른 문화권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생경한 단어이다. 또 '정'이라는 개념도 그렇다. 혈연, 지연, 학교 등등의 다양한 공통성 안에서 정은 관계의 밀도를 높여주는 촉매제가 된다.


그러나 반면 '우리'와 '정'은 관계는 피로도를 높이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너를 위해, 우리를 위해, 너무도 쉽게, 자주, 타인이 가진 고유의 심리적, 물리적 공간을 침해한다. 그리고는 상대방이 내 의도와 같지 않으면, 그 사람의 마음을 살피기보다는 나의 언짢은 기분을 우선하는 경우가 많다.


왜 공자는 내가 원하는 바를 남에게 베풀라고 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바를 베풀지 말라고 했을까? 인간이 가진 자기 중심성에 대한 깊은 통찰이 있었을까? 저마다가 가진 행복을 기준 삼기보다는 최소한의 선을 지키는 것이, 사회를 지탱하는 관계들이 파탄 나는 것을 막아주리라는 혜안이었을지도 모르겠다.


한편으로, 베푸는 일의 저 밑바닥에는 인정욕구를 비롯한 여러 층위의 욕망이 가라앉아 있다. 그러나 내가 원치 않는 것을 상대방에게 강요하지 않는 일에는 자제심이 필요하다. 그리고 어쩌면 '선의'를 상대방에게 실현시키는 일이 나의 일방적인 욕구에 불과할 수도 있다는 자기 객관화도 필요하다. 그래서 베풀지 않는 멈춤이 베푸는 실현보다 더 적극적인 행위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자는 춘추시대에 살던 사士로서, 시대에 제한 하에서 판단한 것일 텐데도, 그의 통찰이 21세기에 들어도 손색없다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2500년 후에도 여전히 인간은 내가 원하는 것을 상대방에게 굳이 베풀고 있을지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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