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문장_시중時中

중용中庸

by 검은 산


20세기에 들어서, 유학儒學은 글을 읽을 수 있는 남자, 책을 구할 수 있고, 일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경제력을 가진 자들을 위한 학문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더 이상은 적용할 수 없는 낡은 이론이기에 폐기해야 한다는 비판도 받고 있다. 동의한다. 확실히 유학은 낡았다. 게다가 2000년도 훨씬 전에 쓰인 글을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한평생을 다 바쳐도 부족하다. 그리고 처음 발생에서부터 현재까지 그 시대의 정치, 사회, 문화와 결부되면서 사회의 안정이라는 지배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해석도 가감되어 온 것도 사실이다.


찾아주는 이가 없으면, 황폐해지는 무덤처럼 ‘학學’이니 ‘교敎’니 하는 것들도 그것을 추앙하는 이들에 의해서 지원을 받아야 생존할 수 있고, 경제력과 권력을 쥐고 있는 지배층의 후원이야말로 부흥의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에, 기존의 질서를 타파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시대의 주인공들을 대변하는 이념이 등장하는 것도 같은 이치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통째로 쓰레기통에 버려 폐기하기에는, 그 안에 생각해 볼만한 부분이 전혀 없냐고 묻는다면, 그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할 수 있다. 우리가 믿는 종교나 배우는 모든 학문들은 짧든 길든 시차가 있다. 최소한의 검증의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성공과 실패, 오류를 파악해야, 건물을 지어 올리듯이 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는 이론의 구조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해서 시차로 인해 생길 수밖에 없는 낡음은 끊임없는 해석을 통해 보강해야 한다.


유학에서 근원이 되는 경전은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이다. 많은 유학의 저서들이 사서삼경四書三經을 읽었다는 전제로 기술되어 있다. 논어와 맹자는 어록이라 재미있는 우화도 많고 등장하는 인물도 여럿이라 지루하지 않지만, 이에 반해 중용과 대학은 매우 개념적이어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중용에서 이 구절만큼은 읽어보고 기억할 만한다.


‘君子之中庸也 君子而時中 군자가 중용을 행하는 것은 군자다우면서 때에 맞게 하기 때문이요.‘


이 구절에서 중용中庸이라는 단어는 설명하는 개념이나, 예시만으로도 책을 여러 권 쓸 수 있을 정도의 응축된 개념이고, 군자君子가 지칭하는 대상이 너무 협소하다고 느낀다면 이 역시 차치해도 좋다. 이 구절에서 가장 의미 있는 단어는 시중時中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때에 맞게 한다.' 옛날 정치하는 사대부들은 세상이 혼란할 때는 물러나고, 그렇지 않으면 나아간다고 할 때 많이 사용했다.


하지만 이 말에는 보다 보편적인 때에 맞게 행동하는 바가 있다고 생각한다. 입고, 먹고, 자고, 싸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망도 때에 맞게 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고, 때에 맞게 말하고 행동함으로써 사회에서 한 인간으로서 온전할 수 있다. 무엇보다, 삶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고서 실현하고자 할 때도 때에 맞음이 필요하다.


때에 맞게 행동하려면 늘, 언제나, 항상 인내가 반드시 필요하다. 기다리는 동안 그냥 무기력하게 있으면 안된다. 자신의 때를 온전히 맞이하기 위해서는 용기와 깨달음 그리고 인내하는 동안 결코 포기하지 않는 긍정적인 마음이 필요하다. 때가 오는 것은 마음대로 조정할 수 없지만 적어도, 그 때가 왔을 때 무엇을 할지는 온전히 자신에게 달렸다. 그러면 모든 순간이 다 '때'가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본다. 이 시중時中이라는 말을 찾아, 그 가운데에 담겨진 복합적인 의미를 찾아 삶을 살아내는 것은 결국, 낡은 것을 쓸모없다 버리지 않는 자의 몫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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