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보_<춘야희우>
두보의 시는 아름답다. 그리고 슬프다. 아무래도 자신이 살았던 시대의 곡절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게 어떤 사람에게는 시대의 흥망성쇠가 족쇄가 되기도 하지만, 두보 같은 천재에게는 개인의 느끼는 감흥이 삶의 희로애락이라는 보편적인 감정으로 확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하는 모양이다. 하지만 그것은 온전히 재능만 일까 아니면 삶의 균형을 포기하고서 얻은 쓰디쓴 과실일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한다.
두보의 시 중에서 가장 좋아하는 시는 <춘야희우>이다. 두보는 문자로 그림을 그리듯이 이 시를 지었다. 눈을 감으면 그가 남기고자 했던 메시지가 눈앞에 보인다. 문자로 만들었지만, 하늘과 땅, 그리고 사람으로 채워진 궁극의 세계가 비[雨]로 완전해지고 있다.
好雨知時節 當春乃發生
隨風潛入夜 潤物細無聲
野徑雲俱黑 江船火燭明
曉看紅濕處 花重錦官城
좋은 비 시절 알아 봄을 맞아 내리누나
바람 따라 밤에 들어 소리 없이 적시네.
들길 구름 어둡고 강 배 불빛 홀로 밝다.
새벽 젖은 곳을 보니 금관성에 꽃이 가득
(정민 역)
이 아름다운 시는 기쁠 때도, 슬플 때도 떠올려진다. 이 시는 만물을 소생하게 하는 봄비를 그려내기도 하지만, 동시에 사위四圍를 적시며 물物과 인간 사이에 장벽이 되어, 존재의 개별성을 극대화시켜 고독을 드러내는 존재로 봄비를 묘사하고 있다. 비는 인간들이 전쟁이 일으키든 말든, 나라가 망하든 흥하든 상관없이 자신의 할 일을 한다. 그리고 비를 담은 땅은 틀림없이 꽃을 피운다.
들길 구름 어두운 가운데, 홀로 강에 배를 띄우고, 강과 땅을 두드리며 떨어지는 빗 속에 등불 하나에 의지하는 우리의 삶이, 새벽녘 비가 그치고 꽃이 흐드러지게 필 것을 기대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하루라도 이어질 수 있을까.
그래서,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이루어질 때, 마땅히 일어나야 할 일이 일어날 때, 인간의 삶이 우주의 질서와 부합된다는 생각이 들어 기쁠 때 생각이 나고, 반대로 당연한 일이 당연하게 일어나지 않아서 깊은 좌절과 슬픔에 빠져들 때 이 시를 떠올리면서 위안을 받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