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인식
역사를 부정적으로 왜곡하고 잘 된 나라는 없습니다. 부모를 있는 대로가 아니라 더 나쁜 사람이라 믿는 자식이 잘 되지 않는 것과 똑같습니다. 때문에 어느 나라든 역사를 긍정적으로 왜곡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조상이 역경 속에서도 잘 이겨내고 성공하였다면, 자손도 시련과 절망 속에서도 조상을 떠올려 조상이 그러했으니 나도 못할 것 없다 생각하여 이겨낼 용기를 갖게 됩니다.
이와 반대로 조상이 형편없으니 자신이 형편없는 것은 당연하다 여기는 자손은 패배의식에 절어서 패자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너무나 역사를 있는 그대로보다 부정적으로 왜곡하는 자들이 많고, 또 그것을 정치, 문화, 영화, 문학에 이용하여 명성을 얻고 돈을 벌고 권력을 장악하는 자가 많으니, 민족이 어찌 잘 될 수가 있겠습니까?
생산적인 일과 소모적인 일
생산적인 일로 돈을 벌고, 생계를 유지하고, 명예를 얻어야 옳습니다. 그런데 반대로 소모적인 일로 생계를 유지하고, 명예뿐 아니라 권력까지 장악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늘 반대하고, 부정하고, 이간질하고, 방해하면서 거기에서 나오는 영향력으로 이익을 챙기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자들이 서민을 위하는 척, 나라를 위하는 척, 숭고한 척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잘 속아 넘어갑니다.
누가 생산적인 일로 살고 있는지, 누가 소모적인 일로 살고 있는지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어떤 책을 읽어야 할까?
책이 다 좋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골라서 읽지 않으면 안 됩니다. 강한 의지의 소유자, 지적으로 성숙한 자, 한마디로 정신 건강에 면역이 강한 사람은 어떤 책을 읽어도 해가 되지 않고, 득이 될 수도 있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 예를 들면 미숙한 사람, 청소년, 편향된 사람, 경험이 없는 사람, 면역을 강하게 해 줄 고통을 겪어보지 못한 사람들은 나쁜 책은 그야말로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책을 읽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재미를 위해서, 시간 때우기 위해서, 지식을 쌓기 위해서, 직업을 위해, 학문을 위해 등 많을 테지만, 최상의 목적은 보다 강해지기 위해서입니다. 강해질 수 있는 책은 다 좋습니다. 그러나 나약해지는 책은 다 나쁩니다. 음악 영화 도 마찬가지입니다. 나약해지는 것은 멀리해야 합니다.
엉터리 노벨상
노벨상은 1901년에 처음으로 수상되었는데 과학이 대중화된 기폭제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인류에 기여한 사람만 받은 것이 아닙니다. 엉터리, 돌팔이들도 받았습니다. 꽤 많지만 대표적인 두 사람만 소개해보겠습니다.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첫 째는 뇌엽절제술로 유명한 안토니오 예가스 모니즈라는 사람인데, 정신질환자를 치료한다고 전두엽을 절제하였습니다. 나중에는 코로 얼음송곳을 넣은 후 휘저어 전두엽을 파괴하여 수술이 아주 간단해졌지요. 이 엉터리 수술로 미국에서만 4만 명, 영국에서 17000명이 희생당했습니다. 1949년 노벨상을 받았습니다. 로버트 케네디 대통령의 여동생도 수술을 받고 바보가 되었습니다.
두 번째는 율리우스 바그너 야크레그입니다. 신경 매독을 치료하기 위해서 말라리아에 감염된 사람의 피를 주입하였습니다. 1927년 노벨 생리의학상을 받았습니다. 말라리아에 감염되면 고열이 나는데 이 열이 매독균을 사멸시킨다는 논리였습니다.
노벨 문학상
시대가 옳든 그르던 옹호하고 지지하고 협조하는 글보다 저항하고 비판하는 글들이 사람들로부터 높이 평가받습니다. ‘저항’이 시대정신이라는 고정관념이 지식인들에게 있기 때문이지요. 높이 평가받기 위해서 무조건 저항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저항을 위한, 저항, 반대를 위한 반대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알게 되면 그것에 저항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러니까 저항, 반대는 그것에 대해 무지가 가장 큰 원인입니다. 무조건적인 저항, 반대를 하려면 필사적으로 무지한 상태를 유지해야만 가능합니다.
한국에도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오다니 참 기쁘고 대견한 일입니다. 축하드리고 싶습니다. 그런데 한강의 수상 소식을 듣자 이상하게 머리에 떠오르는 두 사람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사르트르입니다. 그는 625 전쟁이 김일성이 아니라 미국이 저질렀다고 주장했고 죽을 때까지 그 생각을 버리지 않았지요. 마오주의와 공산주의를 옹호했던 좌파였지만, 물질적 향유와 시몬 드 보부아르와의 계약 결혼 등 지극히 부르주아적적 사생활을 즐기며 살았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거부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말년에 빈곤해지자 상금만 받을 수 없겠냐고 노벨상 위원회에 문의를 했다고 합니다.
또 한 사람은 엘프리네 엘리네크라는 오스트리아 여성입니다. 2004년에 피아노 치는 여자라는 자전적 소설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지요. 이 소설은 피아니스트라는 영화로 제작되어 칸느영화제에서 상을 타기도 했습니다. 이 여성은 20대부터 공산당에 가입하였으니 공산주의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오스트리아 내에서만 알려져서 아무도 노벨상을 받을 거라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성행위 묘사가 과격하고 적나라해서 포르노 작가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