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크리스퍼의 발견
유전자 가위에도 1세대, 2세대, 3세대가 있다. 1세대 유전자가위 ZFN (Zinc FInger Nuclease), 2세대 유전자 가위 TALEN(Transcription Activator-like Effector Nuclease)은 정확도가 높지 않고 제작난도가 높아 비용이 많이 든다는 단점이 있다. 그런데 3세대 유전자 가위는 제작 난도가 높지 않고 정확하다. 20세기 생물학에서 가장 획기적인 발견이 DNA구조의 규명이었다면, 3세대 유전자 가위는 21세기 현재까지 가장 획기적인 발명품이기에 독자들이 상식을 넓히고 싶다면 알아두면 좋을 것 같다. 3세대 유전자 가위의 발명에는 DNA 구조 규명에 얽힌 역사만큼이나 흥미진진한 역사가 있다. DNA규명에 왓슨과 크릭이라는 두 명의 남성 주연과 로잘린드 프랭클린이라는 한 명의 여성 조연 있었다면 3세대 유전자 가위에는 반대로 사르팡티에와 다우드나라는 두 명의 여성 주연과 프라시스코 모히카라는 한 명의 남성 조연이 있다. 주연들은 노벨상을 수상하였지만, 조연들은 노벨상을 수상하지 못했다.
3세대 유전자 가위를 CRISPR-cas9라고 하는데, 이것의 역사는 CRISPR의 발견으로 시작된다. CRISPR는 ‘Clustered Regularly Interspaced Short Palindromic Repeats’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하면 ‘규칙적으로 간격을 두고 떨어져 있는 짧은 회문 구조의 반복 서열 집합’이다. cas9는 CRISPR 연관 효소 9번째를 뜻한다. 회문 구조는 소주 만 병만 주소, 우영우, 기러기처럼 앞으로 뒤로 읽어도 같은 문장을 말한다. DNA 염기가 예를 들면 한쪽 가닥: 5'- G A A T T C -3', 상보적 가닥: 3'- C T T A A G -5' 이라면 5에서 3으로 읽은 것과 3에서 5로 읽은 것은 같은데 이것이 회문구조다.
회문구조 반복 서열을 최초로 발견한 사람은 일본의 미생물학자 이시노 요시즈다. 오사카 대학에서 박사과정 학생이었을 때 대장균의 유전자를 분석하였는데, 그 과정에서 스물아홉 개로 구성된 반복된 염기 서열 다섯 개와 그 사이에는 평범한 염기 서열이 끼어 있음을 발견하였다. 반복서열의 생물학적 중요성은 알 수 없다고 논문을 종결하여 더 이상 연구를 하지 않았다.
이것의 생물학적 중요성과 기능은 스페인의 프라시스코 모히카 박사에 의해 밝혀졌다. 1990년 그는 바닷물보다 10배나 더 짠 염습지에서 잘 자라는 고세균의 유전자를 분석하던 중 회문구조의 반복 서열을 발견하였다. 처음에는 실수를 한 줄 알았다. 그런데 반복서열이 계속 나타나자 여기에는 무슨 이유가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는 자신과 같은 발견을 한 미생물학자가 분명 어딘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에 각국에서 발행되는 논문을 뒤지다가 이시노 요시즈의 논문을 발견하게 되었다. 대장균과 고세균은 다른 생명체인데 똑같이 회문 구조의 반복 서열을 갖고 있으니 이것은 결코 우연일 수 없으며 반드시 이유가 있을 거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모히카 박사는 염기서열의 회문구조 반복구간을 크리스퍼 CRISPR로 명명하기를 처음으로 제안하였는데 이것이 채택되어 각기 다르게 부르던 용어가 통일되었다. 그는 10년 넘도록 크리스퍼에 매달려 연구를 하였는데 그러던 중 세균 염기 서열 DB를 검색하다가 CRISPR 사이에 끼어있는 염기 서열이 바이러스의 염기서열 일부와 정확히 일치한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유레카’를 외칠 만한 대단한 발견이었다.
그것은 세균의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 체계였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세균은 바이러스의 유전자 가닥을 잘라내서 물리친다. 그런데 그 일부를 자신의 유전자 속에 끼워 넣어 보관하는 것이다. 이것은 마치 형사가 범인의 사진을 가지고 다니는 것과 같다. CRISPR는 지구라는 행성에 생명이 시작된 약 40억 년 전부터 있어왔던 가장 치열한 박테리아와 바이러스와의 전쟁의 증거였다. 모히카 박사의 발견은 큰 파장을 불러올 수 있는 획기적이고 훌륭한 것이었지만 그의 논문은 사이언스나, 네이처 같은 최고 권위의 학술지에서 CRISPR의 작동원리가 불분명하다는 이유로 거부당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분자진화학 저널》에 2005년에 겨우 실리게 되었다. 크리스퍼를 발견하여 매달린 지 15년 만에 빛을 보게 된 것이었다. 그 후로 여러 학자들이 세균의 면역에 관련된 논문들을 발표하여 모히카 교수의 연구를 뒷받침하였다.
3세대 유전자 가위는 세균의 반복되는 염기서열을 수상하게 여긴 한 과학자의 호기심이 계기가 되어 탄생하였다. 뉴톤의 만유인력에 있었던 사과나무, 플래밍의 페니실린에 있었던 푸른곰팡이처럼 과학자의 눈앞에 우연히 벌어진 자연 현상에 대한 호기심과 그것을 풀려는 끈기와 집착은 이렇게 위대한 발명과 발견의 필연적 기회로 작용한다.
외부의 침입자로부터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생명체는 제각기 면역시스템을 발전시켰다. 단세포 세균이 자신을 침범한 바이러스의 조각을 자신의 유전자 크리스퍼 사이에 끼어두고 기억한다는 것은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바이러스가 재차 침범을 하면 기억된 부분을 찾아서 정교하게 잘라 물리치는 것을 응용하면 동식물은 물론 인간의 유전자까지 원하는 부위를 잘라낼 수 있게 된다. 3세대 유전자 가위 CRISPR-cas9는 세균의 면역시스템에서 착안한 것이지만, 세균보다 더 복잡한 생명체의 유전자를 편집하고 편집된 유전자를 기존 유전자에 삽입한 다음 잘 작동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CRISPR 분자 구조와 메커니즘을 정확히 알아야 하고 생명체에 맞게 분자 구조를 변경시켜야 한다. 새의 날개를 모방해서 비행기를 만들었지만, 비행기가 발명품인 것처럼, CRISPR-cas9도 발명품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크리스퍼의 메커니즘은 스웨덴 우메오 연구소의 사르팡티에 팀이, 구조는 미국버클리대학의 다우드나 팀이 대서양을 사이에 두고 인터넷으로 교신을 하며 합동연구를 하였다. 다음 편에는 이 두 여성 과학자들의 연구에 대해서 기술해 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