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낸시 웩슬러 -
제임스 왓슨과 프란시스 크릭에 의해서 DNA 구조가 밝혀지자 질병을 유발하는 유전자를 찾고자 하는 이른바 유전자 사냥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었다. 1980년대 말부터 시작된 게놈 프로젝트로 약 32억 자 DNA 염기 서열이 20여 년에 걸쳐 해독되면서 사냥의 범위는 더욱 확장되어 각종 암, 자폐, 알츠하이머 치매, 파킨슨 등의 질병을 포함하여 장수, 천재, 비만, 큰 키, 동성애, 폭력, 약물 중독 유전자를 찾으려는 사냥꾼들이 생물학과 의학의 주류로 성장하였고, DNA라는 용어는 대중화되어 정책의 슬로건이나 기업의 광고에도 등장하게 되었다.
유전자 분석을 비즈니스로 하는 기업체도 생겨났는데 이들은 까마득한 조상을 찾아주거나, 어떤 질병에 잘 걸리고 잘 걸리지 않을지, 적합한 직업은 무엇인지 등을 제공해 주는 상품을 고객에게 판매하였다. 이들 유전자 사냥꾼의 공통점은 생명 현상을 바라볼 때 미세한 DNA 염기는 아주 크게 보이고 거대한 환경적 요인은 작게 보이는 유전자주의적 눈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수정란 단 하나의 단순함에서 50조 개 세포를 가진 극히 복잡한 인간이 만들어지는 이유를 유전자에서 찾으려는 단순함은 이를테면 맛없게 된 요리의 원인을 레시피가 적힌 요리책의 잘못된 글자나 잉크 때문으로 보는 것과 다름없다. 이 때문에 성공한 유전자 사냥이 극히 드문 것이다. 그래서 유전자 염기서열이 해독된 지 20여 년이 넘었지만 여전히 정복된 유전병은 없으며 정복되리라 믿었던 암은 더욱 많아진 것이다.
그러나 유전자 사냥의 기술은 날로 발전하여 한 사람의 유전자 전체를 반나절이면 분석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고 많은 사람의 유전자를 딥러닝 기반의 AI가 인간을 대신하여 사냥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그 결과물이 신통치 않은 현실은 계속되어 질병의 예방과 치료에 결정적으로 기여하는 유전자는 찾지 못하고 있다. 비유하자면 최첨단 배로 바다에 나가 최첨단 그물을 던지지만 건져 올리는 물고기는 예전과 다름없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 사냥이 인류에 공헌한 바가 없는 것은 아니다. 유전자 사냥꾼 중에는 걸출한 인물도 있었다. 그중 한 사람이 헌팅턴 병이라는 희귀 유전질환의 원인을 밝힌 낸시 웩슬러(1945~)이다.
낸시는 미국의 워싱턴 D. C에서 태어나 캘리포니아 주의 펠리세이드와 캔자스 주 코피카에서 성장하였다. 그녀의 아버지는 정신분석학자였고, 어머니는 생물학자였다. 그런데 어머니, 외삼촌, 외할아버지가 헌팅턴 병 환자였다. 헌팅턴 병은 다른 유전질환과 달리 30-40세에 발병한다. 생식이 가능한 나이 이후에 발병하기 때문에 우성유전을 하는데 부모 중 한 사람이 병이 있으면 자녀의 50%가 병에 걸린다. 발병 후 10-20년 사이에 100% 사망하는 무서운 유전병이다. 병은 처음에는 신경질적이고 화를 잘 내는 성격 변화로 시작하여 기억력 상실, 심한 경련, 운동능력 상실로 발전하여 비참하게 살다 사망한다.
낸시는 어머니의 고통을 보고 헌팅턴병을 파헤치기로 결심을 하였다. 낸시의 아버지는 헌팅턴 병 재단을 만들어 딸의 연구를 도왔다. 낸시는 임상심리학을 전공하여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헌팅턴 병의 유전자 이상을 밝혀 후에 유전학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낸시는 헌팅턴 병이 세계적으로 많이 발병하는 베네수엘라의 마라카이보 호수 인근, 라구나 타, 산 루이스, 바라카티스를 방문하여 18,000명 이상의 가계도를 작성하였고 4,000개 이상의 혈액 샘플을 수집하였다. 이를 토대로 연구팀이 꾸려졌는데 연구자들은 1983년에 헌팅턴 병을 유발하는 유전자의 위치가 4번 염색체 짧은 팔 끝에 있음을 알아냈으며, 1993년에는 염색체 4p16.3 위치의 염기 CAG(사이토신-아데닌-구아닌)가 비정상적으로 반복되어 만들어진 변이 단백질을 발견하여 Huntingtin이라 명명하였으며 이것이 뇌의 기저핵에 있는 신경세포를 손상시켜 질병이 발생함을 규명하였다. 이것으로 헌팅턴 병의 병리 메커니즘이 명백히 밝혀졌으며 증상 발현 이전과 태아시기에 진단할 수 있는 유전자 검사방법이 확립되었다.
2020년에는 낸시 웩슬러 자신이 헌팅턴 병에 걸려 투병하고 있음을 공개하였다. 30-40대에 발병하여 50 이전에 사망하는 경우가 대부분인데 그녀는 다행히도 현재 80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치료제 개발을 위해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고 한다.
유전자 사냥꾼의 화살이 정확하게 유전자의 과녁에 꽂힌 예는 헌팅턴 병처럼 전적으로 유전자 이상으로 생긴 극히 드문 유전병뿐인데 불행히도 이런 질환은 아직 치료법이 없다. 유전자로 인간의 질병이나 운명을 맞출 수 있는 확률은 사주관상, 타로 카드, 수정 구슬, 별자리로 점술가가 미래를 맞출 수 있는 확률과 비슷할 것이다. 유전자 사냥꾼은 과학이라는 하얀 가운을 걸치고 유전자로 점을 치는 21세기의 점쟁이며, 우리는 그들이 내놓는 점괘를 무시하기는 께름칙하고, 그렇다고 믿을 수도 없다. 유전자를 편집하여 mRNA 코로나 백신을 만들었지만 그것이 정말 유전공학자들의 설계대로 스파이크 단백질과 항체를 만들어 냈을까? 별이 가득한 우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천체 망원경이 닿는 부분만 조금 알 수 있듯, 전자 원자가 가득한 소우주 세포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자 현미경이 닿는 부분만 조금 알 수 있는데, 조금 안다는 것은 다른 말로 하면 거의 모른다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