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설화는 『한국정신문화대계』 <중과 상놈>의 서사를 편의상 단락으로 구성하여 인용하였습니다.
① 옛날 한 상놈은 부자였으나 양반은 가난했다. 양반은 문 밖으로 나오지 않아 처녀가 물을 길어다 주면 밥을 해 먹었다.
② 상놈은 처녀가 욕심이 나서 새벽에 샘에 가서 처녀의 허리를 안으니 처녀가 저녁에 초당으로 오라고 하였다.
③ 그때 샘에서 이야기를 할 때 선암사의 중이 그 이야기를 듣고 총각이 가기 전에 먼저 가서 처녀를 껴안았다. 처녀가 저항하니 칼로 목을 찌르고 달아나 버렸다.
④ 총각이 오다가 그 장면을 목격하고 놀라서 도망을 가다가 갖신을 흘리고 갔다.
⑤ 동네 사람들이 총각의 짓으로 보고 죽이려고 하였다.
⑥ 벌레가 나뭇잎에다가 중을 잡아 죽이라는 글을 썼다.
⑦ 갑자기 바람이 불면서 그 잎을 처녀의 어머니 치마 앞에다 떨어지게 하여 그 사실을 알렸다.
이 설화의 승려는 살인을 미리 계획하고 실행한 것이 아니라 우연히 남녀가 약속하는 말을 엿들은 후에 처녀를 탐내다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르게 된다. 총각이 살인을 한 사람으로 오해를 받았으나 미물인 벌레가 나뭇잎에다가 중이 범인임을 알리는 글을 써서 암시는 하고 있다.
즉 한낱 미물인 벌레가 중의 징치자로 등장한 것이다. 이러한 것은 동물이 여러 가지 면에서 사람보다 더 신령적인 것에 가깝다는 인식에 기저를 둔 것으로 보인다. 왜냐 하면 초자연적인 존재는 동물을 통해 자신을 드러낸다고 생각한 당시 민중들의 사고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승려가 살인을 한 경우는 주로 여색이나 개인적 욕망을 충족하는 경우인데 나쁜 일을 하는 부정적인 행위를 하는 중을 ‘가래도치 중’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한국정신문화대계』에는 <망신당한 가래도치 중> < 가래도치 중과 김한량> <가래도치와 박한량> <가래도치 중과 장군수> 등의 다양한 예화가 보이고 있다.
개인의 욕구로 인하여 승려의 신분에 어긋나는 행위를 하거나 본능적 욕구에 얽매여서 망신과 경제적 손실 그리고 죽음에까지 이르는 파계승의 한 유형에 해당하는 이야기이다.
현재 과학 수사 시대, 신발을 남기고 간 주인공보다 벌레가 쓴 나뭇잎을 믿을까?
여러 가지를 생각해 보게 하는 설화이다. 민중의 인식 속에는 어떤 일에도 억울한 사람이 생겨나지 않도록 벌레의 신령함을 언급하여 진실을 규명하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본질보다 왜곡이 판치는 현대, 설화 속에 전하는 아름다운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번 되짚어보았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