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회를 기다리며

by 애이미

얼마 전이었습니다. 오랜만에 친구로부터 새해 안부와 덕담이 깃든 인사가 카카오톡으로 왔습니다. 정확히 십 년 만에 온 소식이었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안부를 톡으로 몇 번 주고받다가 제가 먼저 전화를 하였습니다.

우리의 통화는 그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마치 어제 만나 헤어진 것처럼, 자연스럽게 한 삼십 분 정도 설왕설래하며 그간의 시간을 다 용해시켜 버렸습니다.

그러고도 아쉬움이 가시지 않아서 1월 둘째 주 금요일에 만나기로 약속하고 전화를 끊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세월 동안 서로 지역도 다르며, 삶의 방식도 다르고, 걸어온 길도 달라서 많이 변모되었을 것이고 얼굴을 성형했을 수도 있을 것이란 우스운 생각도 살짝 들었습니다. 아마 서로를 알아보지 못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이르러서 혼자 웃기도 했습니다. 시쳇말로 ‘10 년은 강산도 변한다.’는데 요즘 같은 변화 속도이면 어쩌면 서로 감당이 되지 않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2013 년에 처음 만났습니다. 대학원 입학이 있던 봄학기였습니다. 교정의 잔디에 잔설이 남아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게 느껴진 날이었습니다.

저는 가르치는 일을 오래 지속한 데서 나오는 특유의 매너리즘에서 탈피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고, 다시 대학에서 학업을 할 수 있다는 신선함을 품은 설렘으로 출발한 것이었습니다.

첫 개강일에는 직장에서 처음으로 연가를 내어 참가한 날이기도 했습니다. 또 새로운 일과 새로운 사람을 만나고 배우는 것의 희열에 들뜬 나머지 한껏 단장한 것은 아니지만, 정장에 어울리는 높은 구두를 신고 격식을 차려 갔습니다.

서울 날씨에 익숙하지 않은 남부 지방에서 살아온 나에게 있어서의 눈은 그저 영화 속의 낭만적인 분위기의 이미지에 고정되어 있었을 뿐이었음을

실감한 날이었습니다.

게다가 겨울이란 계절을 고려하지 않고 아무 생각 없이 신은 높은 구두는 그날 더없이 가당찮은 것이었습니다.

비록 잔설이었지만, 기온하강으로 얼어 형성된 미끄럼 타는 듯한 길에 한 발도 앞으로 내딛지 못해 어기적거리고 있을 때, 그녀가 살며시 다가와 저에게 손을 내밀었고, 그녀의 손을 잡은 저는 비로소 강의실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나이가 저보다 한 살 적은 그녀는 주부이면서 석박사통합 과정에 지원하였고, 전 현직에 근무하면서 박사과정에 지원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만남은 그렇게 시작되었고, 서로 신뢰하고 다른 사람들보다 잘 소통이 되었습니다. 뒤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에 그녀는 누구나 섣불리 추종할 수 없는 자산가였음을 알았고, 시간도 많고 열정도 많은 것 같았습니다.

전 그녀에 비견할 돈이나 시간은 없었지만 열정은 있었습니다. 우리는 공통된 분모의 열정으로 두 학기를 같이 공부하면서 우정의 탑을 하나씩 쌓아갔습니다.

매주 새벽 첫 KTX로 서울을 오르내리며 힘들었지만,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추사 선생이나 다산 선생의 간찰을 공부할 때도, 중국원서를 번역하여 제출하는 과정에서도 저는 융통성 없이 못하는 중국어를 일일이 자전을 찾아가며 밤샘하면서 해결을 해도 한계에 부딪쳐서 벽에 막혀 있을 때, 그녀는 여유 있는 태도로 번역을 시켜 나온 결과물을 우리들에게 제공하는아이디어와 순발력으로 우리를 즐겁게 해 주는 묘안과 능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행복을 질투하는 신이 있나 봅니다. 여러 가지 일을 병행하던 저는 급기야 시간의 쫓김과 결핍이 제 발목을 잡았고, 배움에 집착하는 사이에 가정에서의 엄마와 아내 그리고 누구의 딸, 누구의 며느리란 중첩된 현실적인 역할이 제 목을 조르기 시작하였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직장에서의 보직 업무와 책임감 그리고 여타의 것들이 또 다른 무게 지움으로 저를 가로막았습니다.


어느 날 인생은 버틴다고 되는 것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고, 제 주위에는 사람은 많았지만 저를 도와줄 진정한 사람이 없음을 깨닫게 되자 제 마음속은 원망의 씨가 발아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혼자 모든 것을 헤쳐 내면서 450킬로 넘는 장거리를 새벽 첫 기차를 타고 매주 오르내리면서

오롯이 가진 저만을 위한 시간의 이면엔 그동안 응고되어 침잠되고 누적된 피로의 결정체들이 한순간 터지면서 봇물처럼 치오름을 느꼈습니다.

어느 날 아침 침대에서 일어나려는데 제 몸이 제 생각대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몇 번 일어나려고 시도하였지만 허탕이었습니다.

그다음은 119 긴급전화를 걸고, 얼마 구급차를 타고 응급실로 갔고, 여러 영상 사진을 찍고 입원을 하였습니다. 경추신경 추간판탈출로 병원에 4주 이상 입원 및 수술 후에 안정을 취해야 하며, 되도록 경추를 당분간 쓰지 말고 누워있어야 한다는 의사의 경고가 내려졌습니다.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이 휘발된다'는 간결한 생각에 욕심을 내리고 3학기 등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의 미등록 소식과 입원소식을 듣고 그녀가 병문안을 왔던 것이 그녀와의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그 후, 하고 싶은 공부를 접고, 수험생의 어머니로서 한 남편의 아내로서 후진 교육을 하는 교육자로서 제게 주어진 것들도 큼직한 일들이었음 알게 되었습니다. 해야 하는 일에 집중해야 하는 현실에 대한 인식을 하였고, 제가 하고 싶은 것은 한낱 제 욕망이라고 스스로 최면을 걸면서 집착하고 있는 자신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저의 현실 인식에 따른 포기는 의외로 가족들로부터 칭찬 아닌 칭찬을 받았고, 눈에 띄는 건강 회복이란 보상을 받은 것을 자위하면서 보편적인 일상으로 회귀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습니다.

한편으론 스스로 중도 포기한 것에 대한 실망감이 엄습해 올 것에 대해 방어기제로 무장하면서 그와 관련된 것을 의도적으로 외면하고 단절해 온 십 년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녀와 통화를 한 후, 그 사이 잊고 있었던 자질구레한 감정들이 저 밑에서 스멀스멀 기어 올라오는 듯합니다.


그녀는 박사 학위를 받은 후 강의도 하고, 자기 분야의 거두로 우뚝 서 있으며, 어디 대표라고도 하며 자신의 근황을 알려 줍니다.


"참 잘 되었다!"라고 축하해 주었습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프루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이 생각이 났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늘 선택의 연속선상에 있습니다. 살아오면서 제가 했던 그 선택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는지?, 또 “나 스스로 한 선택인가? 아니면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이끌려 그렇게 유도된 것인가?” 하고 생각해 보지만 인생을 어느 정도 알 나이가 되었음에도 아직도, 여전히 알 수가 없습니다.

삶의 길목에서 맞닥뜨리게 되는 여러 가지 일들이 아마도 진정 제가 한 선택처럼 보이지만, 제가 한 것이 아닌 것 같은 이 미묘함의 근원은 어디에서 기인하고 있을까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심원의 나를 찾아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