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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r 20. 2024

노바디로 사는 것

담백한 사이, 그리고 그리움

으슬으슬 추웠다가 다시 더웠다가 몸이 정상이 아니구나 싶었다. 오로빌에 다녀온 지 한 달이 되었다.

몸살이 오는 느낌. 역시 몸과 마음은 연결이 되어 있는 게 틀림없구나... 지난주부터 무거워진 마음의 영향을 받기라도 한 걸까? 몸은 반응하고 있었다. 해를 쬐어야겠다 싶었다.  쉬고 싶은 마음을 뒤로하고 오로빌에서 사 온 등이 훅 파인 민소매 하나를 걸치고 해변으로 갔다.

집 앞 해변을 아침 시간에 자주 걷곤 했는데 12월 이후, 그러니까 해가 바뀌고는 처음 홀로 걷는 해변이었다. 몸과 마음이 아픈 상태. 내 몸을 태양에게 내 비치기로 했다.

오로빌에서 따뜻한 햇볕 아래 걷고 또 걸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검게 탄 피부가 부지런한 오로빌 생활을 증명해 주는 날들이었다.


걷다 보니 작년에 해변 맨발 걷기를 하며 눈인사하던 사람들이 보이지 않음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백발이 성성한 어르신부터 울룩불룩 근육을 자랑하던 아저씨, 늘 빨강 수영복을 입고 걸으시던 할머니. 그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다 어디로 갔지?

그때 나는 해변을 걸으며 모자와 선글라스를 꼭 착용했는데 어느 순간부터는 좀 벗자 싶었다. 늘 나에게 눈인사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선글라스 너머에 가려진 내 눈빛을 보여주어야 할 것만 같았다.

해변 끝에서 끝까지 걷다 보면 꼭 중간 지점에서 마주치는 사람들이 있다. 모자를 눌러쓴, 선글라스를 쓴 나를 마주칠 때마다 웃어준다. 나도 보답을 해야지. 햇볕에 얼굴 그을리는 것쯤 무슨 대수랴.

그렇게 눈인사 주고받던 사람들이 안 보이니 오늘 내 맨발 걷기 시간은 외롭다는 느낌마저 들었다.


바르셀로나에 갈 무렵 김영하 작가의 책을 읽은 적이 있다.

떠나기 전 골라 읽은 책에는 흥미로운 단어가 등장했다. 노바디와 섬바디!

여행을 이야기하며 언급할 만한 단어라고 생각해 보지는 않았던... 요즈음은 섬바디였던 내가 노바디가 되는 것을 본다.

여행지에서 말이다. 김영하 님의 말처럼 여행지에서, 내가 사는 이곳에서 나는 노바디로 사는 느낌이다. 때로는 깊은 외로움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나를 모르는 사람들과 주고받는 담백한 인사가 나를 노바디로 만든다. 그 느낌이 참 좋다.

오로빌에서도 그러했다. 처음 보는 사람들과 주고받은 상큼한 대화와 웃음, 그건 마치 매일 쌀밥만 먹다가 토마토 파스타를 먹는 것과 같았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는 그들은 나에게 어떤 요구도 없다. 그저 미소를 띄며 바라볼 뿐.

이런 노바디의 생활이 편안해진다.

늘 떠돌며 사는 나는 그 지경이 세계로 확장된 느낌이다. 내 귀환의 원점은 어디인가 하고 책의 저자가 묻는다. 이대로 떠돌며 살아도 좋을 것 같은 순간이 있다.

꼭 섬바디가 될 필요는 없다. 내가 가는 그곳에서 노바디로 살면서 삶을 깨달아가도 좋지 않을까?

뼛속부터 히피이다. 내가 본 나는 말이다.


아부다비에 플루메리아가 있어서 다행이다.

떨어진 꽃잎을 주워 손끝으로 뱅글뱅글 돌리다가 코에 갖다 대니 순식간에 오로빌 기억이 떠올랐다.

마트리만디르를 맨발로 걷다가 만난 그 플루메리아가 오로빌을 그리워지게 했다.

다음 주에 런던으로 간다. 책 한 권을 들었다. 런던에서는 또 어떤 가면을 가지고 노바디 여행을 할까?

책 속 작가와 이야기 나누어 볼 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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