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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Mar 06. 2024

남인도 '오로빌 공동체'이야기(3)

눈을 감으면 보이는 것들


얼마나 잤을까? 꿈도 없이 잔 걸 보니(기억을 못하는 것이겠지만) 꽤 피곤했나보다.

눈을 뜨니 아부다비, 집이다. 꿈을 꾼 걸까? 분명 어제까지는 오로빌에 있었는데...

늘 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꿈을 꾼듯한 기분으로 며칠을 지내는 것같다.

어젯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며 전해지는 온기에 '다시 집으로 왔구나.'하며 온수 샤워가 이렇게 감사한 적이 있었나 싶었다. 아침에 보이차를 내리며 한동안 없었던 루틴을 다시 이어갈 수 있음이 감사했다. 아이들은 핑크색 소파커버를 어루만지며 "드디어 우리집이다." 를 외쳤다.

간단한 아침을 먹고 설거지를 하면서 오로빌에서 묵었던 농장 숙소 싱크대를 떠올렸다. 물이 내려가지 않는 막힌 설거지 공간과 바닥에는 바퀴벌레와 개미들.. 그 싱크대는 세면대 기능을 하기도 했다.

농장 나무들 사이에 있는 뻥뚫린 공동 샤워장이 불편한 아이들은 페트병 목욕을 하기도 했었다.

제대로 된 냄비 하나, 컵 하나가 없어서 아쉬워했고, 일곱 식구가 앉을 의자나 식탁도 없어 2층으로 가는 철 계단에 앉아 식사를 하기 일쑤였다. 떠나지 않았다면 일상의 감사를 느낄 수 있었을까?

책상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는 지금, 지나간 오로빌의 순간순간이 머리를 스친다.



오로빌. 공동체 실험의 장, 수많은 커뮤니티들, 세계 각지의 사람들이 모여 사는 그 곳.

오로빌 공동체의 정신을 이어나가기 위한 누군가의 몸부림들, 그렇지만 각자가 원하는 삶의 방향이 다른 사람들의 모습을 보기도 했다. 자본과 경쟁의 베일에 가려 놓치고 사는 무언가를 갈구하는 사람들.

나 또한 고민 되는 삶의 부분들을 오로빌에서 다시 들여다 보기도 했다.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것, 그 너머의 것을 보는 눈.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  순백의 영성의 거울을 갈고 닦으며 서로를 보듬는 공동체를 스리 오로빈도와 마더는 꿈꾸었을 것이다.

우리는 신이 아니기에 인간 존재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지 못할 때가 종종 있다.

특별히 관계의 문제가 그러하다. 각각 다른 성격과 외모, 인종으로 지구별에 살고 있는 우리들.

서로 달라서 마주하게 되는 삶 곳곳의 관계의 문제들..

그리고 내면 뿌리 깊은 곳에 있는 해결되지 않는 나만 알고 있는 내 마음 속 검은 공간.

우리가 마음이라고 일컫는 그 영역은 아무리 문명이 발달하고 기술이 좋아진다고 해도 해결되지 않는 영역인 것같다.

어떻게 하면 이 어려운 문제를 잘 보듬어 갈 수 있을까 생각해 본다.

결국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도 나의 내면의 조화와 균형을 어떻게 잘 잡아갈까에서 부터 시작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오로빌에서의 3주는 아이들과 함께 끊임없는 먹고, 자고, 놀기의 연속.

그러나 그 기본적인 것 속에서 전체의 삶을 떠올리게 하는 순간들이 많았다. 즐거운 순간, 힘든 순간을 함께 한 시간들. 지나고 보면 모두 꿈같은 순간들이다. 꿈은 애써 꾸지 않는다. 그저 잠이들면 누구나 꿈을 꾸게 된다. 이어가는 나의 생활도 꿈과 같기를.. 애씀없는 꿈의 연속이기를 바래본다.

아이들은 하루만 살더라. 그 날에 충실하더라. 울고 싶으면 울고, 춤추고 싶으면 춤을 추던 아이들이 떠오른다. 기쁨과 슬픔으로 구분짓는 하루가 아니라 그저 하루를 충실히 사는 아이들을 닮고 싶다.

내일이 되면 어제의 일을 다 까먹은 듯 또 깔깔대는 아이들의 순수한 마음을 닮고 싶다.



다시 아부다비로 돌아왔다.

잠시 머무르는 이곳의 집이, 따뜻한 물이, 보이차가, 전기 끊김 없이 두드릴 수 있는 키보드가, 침침하지 않은 전등 불빛이, 내 곁의 아이들이, 떠오르는 친구들이 늘 내 곁에 있음이 감사하다.

어제 첸나이에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오며 귀에 이어폰을 꽂고 눈을 감았다.

눈을 감으니 더 선명하게 보이는 오로빌. 그리고 나의 친구들...

오로빌에 있는 동안 내가 집중했던 것은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눈을 뜨자..였다.

오로빌에서 맡은 꽃향기, 풀내음, 바람결에 코를 스치는 다양한 향기들이 그 곳을 마음에 새기게 했다.

오로빌이 거기에 있어주어 든든하다.


좋은 꿈을 꾸었다.

매일 아침 밭에서 일을 하고, 바이크를 타고 달리며, 인도 요가 선생님을 만나고 황톳길을 걷는 꿈.

꿈을 깨서 현실로 돌아왔는데 기분이 좋다.

지나고 나면 꿈같은 일상들. 놀이이자 축제인 하루하루.

지금은 오로빌을 눈으로 볼 수는 없지만 그 곳의 향기를 떠올리기만 해도 입꼬리가 올라간다.



아침에 은서가 그림을 그린다.

농장에서 함께 지낸 소와 개, 오리와 닭을 그린다. 색도 입힌다.

꿈 속에서는 흑백으로 보이던 순간들에 색을 입히니 지금도 함께 있는 듯, 선명해진다.

은서의 그림을 보며 내 곁에 있어주는 이들을 떠올린다.

고마워~

네가 어떠하든 그냥 곁에 있어주어서.


늘 거기 있어주는 오로빌도 고마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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