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예술가
바르셀로나 El masnou 해변을 걷던 그 아침에,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한참을 통화하다가 모래에 털썩 주저앉아서 모래를 뒤적뒤적 하는데 여기가 아부다비 알라하 해변인지 지중해 바다 앞인지.. 모래만 쳐다보며 통화하는 중에 잠시 진공상태처럼 생각이 멍하게 멈춰버려 여기가 어디인지 감각하기 힘들었다.
모래 사이사이에 있는 매끈한 유리조각들은 형형 색색 작고 귀여웠다. 작은 조개와 소라들도 주웠다. 호주머니에 슬쩍... 앙증맞은 바닷가 잔잔바리들을 도둑질(?) 해 왔다.
며칠을 그곳 해변가 숙소에 머무르며 아침이면 걷고 오후에는 람블라스 거리, 고딕지구를 걸었다.
바르셀로나 여행은 가우디와 만날 기대로 왔다.
El masnou 해변에 머무르며 월든을 읽다가 지중해 해변 이야기를 하는 소로우를 만나며 이곳 석양과 동트는 장면을 마음에 담았다. 같은 하늘 아래에 같은 태양인데 지중해 해변의 태양이 지고 뜨는 장면이 또 이렇게 다른 아름다움을 보여주는구나 하며 가슴까지 환해지는 따스함을 느꼈다.
참 따사롭고 온화한 기운.. 태양 빛은 우리에게 이렇게도 따뜻하게 다가오는구나 했다.
구엘공원. 그곳에서 가우디를 만나야지 했다.
하지만 구엘 공원을 들어서자마자 나를 반긴 건 다름 아닌 기타를 치는 한 예술가.
목덜미에 땀이 맺히도록 열정적으로 기타를 치던 연주가를 잊지 못한다. 젖은 머리를 흔들며 꼬은 다리는 연신 달각거리며 흥에 겨워 열정적으로 기타를 치던 그의 모습.
구엘공원은 가우디가 만든 그 시대의 호화 주택지구였다고 한다. 하지만 여러 이유로 분양이 되지 않자 그 후 이곳은 공원이 되었고 지금도 바르셀로나의 유명한 명소로 세계사람들이 다녀간다.
가우디가 만든 다리는 그 위로 마차가 다녔었다고 하는데 그 색이 참 자연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의 돌들을 모아 다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기울기나 아치모양의 구부러진 정도도 일반적인 건축물과는 사뭇 다른 모양을 하고 있었다. 여러 갈래로 나뉜 길 사이사이 나무와 돌들을 살펴보았다. 조금 걷다 보면 또 다른 연주가가 연주를 하고 있다. 구멍 난 바지를 입고 밑창이 들린 오래된 신발을 신은 건반 연주자를 만났다. 눈을 감고 고개를 흔들며 연주하는 그의 모습은 흡사 베토벤 같아 보였다. 잠시 그 앞에 앉아 그의 연주를 즐겼다. 한국의 피아노 독주회가 떠올랐다. 말끔한 차림의 연주자들이 무대에 올라와 연주를 한다. 그들은 오랫동안 음악공부도 했을 테고, 다 그렇지는 않겠지만 대부분 집안 형편도 괜찮은 사람들이겠지? 대비되는 모습들을 마주했다. 열이면 열, 구엘공원의 예술가들은 그 행색이 우리나라의 노숙자와 같았다. 하지만 연주 실력만큼은 너무나 훌륭했다. 걷다가 또 한 기타리스트를 만났다. 십자가 아래에서 앉은 연주자는 발등에 오래돼 보이는 캐스터네츠를 붙이고 입에는 하모니카를 물고 한 손은 기타 현을 열심히도 퉁겨댔다.
어느 누가 와도 멈추지 않을 기세로 송골송골 땀방울 맺힌 이마를 연신 흔들어대는 그 사람.
나는 구엘공원에서 가우디를 만나고 싶었지만 그는 과거에 머물러 있었고, 대신 현재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예술가들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삶이 예술이고 예술이 삶인 사람들을 만났다. 자신의 음악에 심취한 연주자들은 무슨 생각을 하며 연주할까? '오늘은 얼마나 벌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할까?
삶의 예술, 예술적인 삶이라는 말은 과장된 걸까? 예술이라는 세계는 내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깊고 심오하고, 반면 더 치열하고 고독한 영역은 아닐까? 감히 상상해 본다.
누군가 내 또래 아줌마들을 두고 '육아 예술'을 한다고 했다. 콧방귀 뀌며 듣던 그 말이 가슴깊이 다가오는 순간들이 있다. 내 삶의 영역 안에서 예술가로 사는 것.
주어진 삶 자체를 사랑하며 사는 사람들이 진짜 '예술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