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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Feb 21. 2024

남인도 '오로빌 공동체' 이야기(1)

태양의 마을에 가다

오로빌에 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시간이 어떻게 흘렀는지...첸나이 행 비행기에 몸을 싣고 아이들과 인도 땅에 도착한 첫 날.

미리 예약한 오로빌 택시 기사님이 내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고 기다리고 있었다.

세 시간여 택시를 타고 달렸다. 처음 보는 창 밖 풍경. 여기가 인도인가? 사람들은 오토바이와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고 도로 위 소들은 무단횡단을~ 아이들은 맨발로 길거리를 다니고 있었다. 스치듯 보이는 풍경들이 새롭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했다.

오로빌로 들어가는 동안 지는 해를 볼 수 있었다. 인도 첫 날, 석양을 보는 구나..

농장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어둑한 저녁. 미리 와서 지내고 있는 경주 식구들이 반겨주었다.

세 아이를 데리고 와 고생했을 친구의 등을 다독여 주며 안부를 대신 전했다.



농장 속 숙소. 벌레와 모기가 많이 있었다.

기어다니는 도마뱀. 뜨악... 참 오랜만에 보는 숲속 친구들..

‘우리 잘 지내보자.’ 맘 속으로 되뇌어 본다.

오전에 잠시 농장일을 거들어 주기로 하고 약간의 방세를 내고 빌린 숙소. 1,2층으로 나뉘어 두 식구가 지내기로 했다.

첫 날밤을 잊을 수가 없다. 밤새 들리는 풀벌레 소리, 새벽에도 짖는 개들의 소리, 날이 밝아 오자 여러 새소리들과 닭울음 소리로 잠이 깨곤 했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첫날밤을 잘 보내고 그 다음 밤 부터는 그 소리들이 자장가 처럼 들리기 시작했다.

따로 휴대폰 알람을 맞춰둘 필요 조차 못느꼈다. 닭들과 새들이 아침을 알려주니...


새로 생긴 루틴. 아침에 일어나 요가원을 간다. 한 사람이 요가 수련 하는 동안 남은 한 사람은 밭일 수련을 한다.

두 가정에 총 다섯명의 아이들이 있으니 하루 루틴을 잘 짜보자 하고선 정한 우리들만의 조그만 규칙들이다.

친구와 나는 매일 요가를 번갈아 하고 밭일도 번갈아가며 하기로 했다. 아이들은 certitude라는 자연 놀이터를 좋아해 그 곳을 자주 가게 되었다.

오로빌 내에는 각종 프로그램이 아주 많다.

매일 그날의 프로그램이 왓츠앱으로 날아오는데  그걸 보고 있으면 하나 하나 다 해보고 싶다는 욕심이 생겨났다.

그렇지만 우리는 대가족이 아니던가! 각자 하고픈 것들, 먹고 픈 것들이 달랐다.

어느 날은 놀이터 황톳길을 하염없이 걸으며 아이들이 놀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았는데, <자연치유> 책을 다 읽고 난 다음날이라서 그랬는지.. 그저 황톳길만 주구장창 걸어도 좋을 것만 같았다.

요가 수련과 황톳길 걷기를 정성들여 해보려고 한다.


며칠 전에는 ‘ATB 몸 감각 알아차림’ 수련을 하러 갔다.

5원소 중 ‘흙’에 관한 것들을 탐구하던 날... 동그랗게 둘러앉은 사람들 가운데 낯선 내가 앉았다.

안대로 눈을 가리고 흙에서 온 자연물들을 탐구했다. 만지기 전, 만진 후. 그리고 몸 어느 부위에 대어 보았을 때의 느낌, 냄새, 소리…

감각을 깨우는 명상의 시간이었다. 나는 특별히 나무를 만졌을 때 어느 한 사람이 떠올랐다.

나무의 향과 거친 표면의 느낌이 그 사람을 생각나게 했다.

이제는 나보다 키가 큰, 내 어린 친구 ‘애나’


디파남 학교라는 곳에서 진행했는데, 수업 후 학교를 둘러보며 걷다가 커다란 나무 하나를 끌어 안았다.

감각 깨우기 수업 후 열린 가슴은 나무를 끌어안게 했다. 자연에서 온 것들은 피부 뿐 아니라 감정까지 만져준다 싶었다.

ATB 수련은 꾸준히 하면 좋을 것 같다.

감각이 열린다는 것만으로 누군가에게 무조건적인 사랑이 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ATB 수련시간에! 자연 재료들을 몸소 느끼는 중...


모페드라는 오토바이를 하나 빌렸다.

걷는 것도 좋지만 조금 멀리 떨어진 곳을 가기에 좋은 교통 수단 같다. 파리의 15분도시가 떠올랐다.

15분 거리에 모든 인프라가 구축된 도시가 지속가능한 도시라고 했던 파리의 어느 교수의 이야기.

이 다음에 경주로 돌아간다면 나는 어떤 모습의 마을을 꾸려가고 있을까?


친구네 두 아이는 매일 자전거로 이동을 하는데 뒤에 따라 가며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웃음이 절로 난다.

힘든 기색도 없이 바람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아이들의 모습이 예뻐서 나는 연신 아이들 사진을 찍곤 했다.

아이들 이야기를 잠시 하자면, 우리는 어른 둘에 아이 다섯. 일곱명이 왠만하면 오전 시간에 회의를 하고 있는데, 우리는 그 회의를 서로서로 조금씩 의견을 조율해가는 도구로 삼고 있다. 어른들이야 조금씩 양보를 하겠지만 아이들은 그 순간에 감정적으로 반응하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아침식사를 하며 기분 좋게 둘러앉아 서로의 이야기를 듣고 또 맞추어 나가는 시간을 갖기로 한 것이다.

오늘 먹고 싶은 것, 오늘 하고 싶은 것, 내가 싫은 것을 이야기 해보자. 아이들은 이 회의 과정을 어떻게 느낄까? 이게 의미가 있는 걸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회의를 빼먹은 날이 있었는데 도나(우리는 서로를 별명으로 부르기로 했다)가 “왜 오늘은 회의 안해요?”라고 하는게 아닌가?

오호, 회의시간이 그리 싫지만은 않구나.  느낌이 좋았다.

아이들과 온 종일 함께 있으면서 깨닫는 것들이 많다. 아이들이야말로 ‘지금,여기’를 사는 존재가 아닐까?


늦잠자는 우리집 두 아이와는 달리 2층 친구들은 일찍 일어나곤 했다.

침대에 누워 커튼 밖 2층 계단에 도하의 발이 보였다. 아마도 계단에 앉은 것 같은데 허밍으로 음음 하며 흥겨운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새벽 동이 트는 시간에 말이다.

계단에 걸친 도하의 발이 스텝 바이 스텝으로 좌우 반동을 한다. 리듬에 맞춰 움직이는 발을 유심히 보았다.

누워있던 내 몸을 일으킨 도하의 리듬, 그리고 스텝.  그 순간을 놓치기 싫어 영상으로 남겨 두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저절로 나오는 흥겨움. 무엇이 아이를 노래하고 춤추게 만들었을까?

딱딱한 건물 안이었으면 그랬을까? 아마도 자연 속이라 그랬을 것이다. 해가 뜨면 새들도 노래하고 2층 도하도 노래했다.


매일의 불편함들도 있다.

처음에는 익숙치 않았던 것들. 우리가 불편하다 느낀 그것들...

그러나 이제는 익숙해져간다. 누구나 그러하듯 시간이 흐르면 익숙해지는 것들이 당연하리라. 매일 밤 하루의 때를 찬물로 씻어낸다. 찬물 샤워마저 익숙해져 버린 우리들... 화장실은 저 멀리 컴포스트로 된 생태 화장실인데 급할때는 농장 어딘가에 영역 표시(?)를 하기도 한다.

물을 세게 틀면 수압 때문에 건물 밖으로 물이 쏟아져 나오기 일쑤이고, 전기는 가끔 꺼져서 블랙아웃 상태로 한동안 지내기도 한다.

음식을 먹기 위해서는 장을 봐 와야하는데 외식을 하기도 하지만 배고픈 순간이 잦은 아이들을 달래려 갖가지 궁리들을 한다.

해가 지면 나가기 힘들어서 일기를 쓰거나 그림을 그리고 1시간 정도 자유시간 동안 보고 싶은 영상도 본다.미디어 시대를 사는 아이들에게 단박에 전자기기를 제거해 버리는 건 너무 힘든 일임을 알았다.


어느 밤에 농장 한 켠에 도나가 쭈그리고 앉아 똥을 누었다. 내눈에 포착된 도나. 일어나서 자기 똥을 확인하고는 나를 보고 씨익 웃는다.

아이쿠! 황금똥이로구나.

바닥에 눈 똥을 바라볼 날이 언제 또있을까? 귀여운 도나야~!


친구네와 함께 지낸지 일주일.

서로에게 맞추어 가는 중이다. 이번 한 주 또 어떤 일들이 있을까? 기대가 되는 한 주~

열린 가슴, 그리고 태양의 기운을 잔뜩 받고 에너지 업.. 내가 믿는 신께서 주시는 사랑의 씨앗을 품고 하루를 사랑으로 살자.


기억에 남을 내 맨발 걷기 현장, 황톳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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