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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현 Feb 14. 2024

빛쟁이 로마

빛으로 물든 로마 이야기

미리 공부해서 잘 알고 보아야 마음에 와닿을 곳이라 여기며 로마의 여러 정보들을 책과 영상으로 미리 새기고 출발했다.

일주일 동안 매일 걷고 또 걸었다. 피렌체, 그리고 로마의 거리를...

"꼭 공부가 필요할까? 그곳의 느낌을 온전히 느껴보는 건 어떨까?" 하던 한 분의 말이 떠오른다.

그 말의 영향이었는지 아니면 정말로 나는 로마를 감각으로 느끼고 싶었는지...

여행을 마치고 온 지금, 로마 곳곳을 걸으며 만난 빛에 대한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진다.

특히 어느 한 날 밤에 걸었던 거리는 내 기억에 오래도록 남아 있을 것 같다.


밤의 로마는 낮에 본 모습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어둠이 내려앉아 한층 차분해진 로마는 아픈 발을 이끌고 더 걷고 싶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콜로세움> 밤과 콜로세움, 그리고 빛. 상처받은 건축물이 주는 위로

밤에 만난 콜로세움은 빛을 품어 아치 모양 창들이도드라져 보이고, 그 주변은 사람들 소리로 씨끄러웠지만 건물 사이사이를 뚫고 나오는 빛을 보고 있으니 마치 이어폰 노이즈캔슬링 기능이라도 켜진 것처럼 주변 소리들이 차단되는 느낌이었다.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 사람들 말소리가 점점 작게 들렸다. 내 앞의 건물들은 너무도 웅장하게 보였다.  오래전 검투사들의 몸짓과 그곳의 사람들 함성소리가 들리는 듯, 콜로세움의 빛을 바라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파괴된 벽면 위에도 빛이 내려앉았다. 오래전 로마의 대화재, 죽음이 행해지던 이 공간이 지금은 빛으로 물들어 "우린 이제 괜찮아."하고 말하는 듯했다.


어둠이 내려주어 빛을 보게 되고 그 빛에 이끌려 적막감 속에서 바라본 콜로세움. 밤의 로마를 잊을 수 있을까?

빛을 따라 걸었다. 캄피돌리오 광장을 지나고 팔라티노 언덕에 올라 포로 로마노를 내려다 보았다. 누운 돌, 서 있는 돌, 깨진 돌. 낮에 봤더라면 그렇게 보였을 것...

그러나 밤이 내게 준 포로 로마노 풍경은 빛이 비치는 돌과 기둥들이 온기를 품은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 순간 로마의 중심지, 천년 간 공회당의 역할을 했다는 그곳의 의미는 무색해지고 나는 그저 폐허가 된 그곳에서 빛을 마주하며 오래전 이곳의 열정을 짐작해 보았다.

<포로 로마노>   모두가 잠든 밤... 이곳의 기둥, 돌들도 따뜻한 빛에 감싸여 잠이 든 게 아닐까?



전 세계 여행자들이 다 여기에 와있나 싶을 정도로 낮시간 동안에는 유적지마다 사람들로 붐볐다. 작열하는 태양빛 아래를 걸으며 모자를 꾹 눌러쓰고 걷고 또 걸었다.  

젤라또를 먹으며 성 베드로 대성당으로 향했다.

들어서자마자 피에타 상이 보였다. 숨을 거둔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마음을 짐작할 수나 있을까? 그 앞에 잠시 머물러 예수의 형상을 바라보다가 웅장한 성가 소리에 이끌려 성당 안으로 향했다. 미사가 시작된 성당  중심으로 들어가 고개를 드니 둥근 쿠폴라가 보였다. 쿠폴라를 감싼 열여섯 개의 창문으로 햇빛이 쏟아졌다. 미켈란젤로가 70세에 설계했다는 돔형태의 쿠폴라는 해가 드는 각도에 따라 시시각각 다른 빛을 낸다고 하는데,  벽에 기대어 한참 올려다보았다.

<성 베드로  성당의 쿠폴라> 성당 바닥에 드러누워 하루 종일이라도 보고 싶던.

천사와 성자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쿠폴라를 보고 있으니 내가 참 작게 느껴졌다.

쿠폴라 아래에 베드로의 무덤이 있었다. 나는 삶과 죽음이, 빛과 어둠이 동시에 존재하는 공간에 서 있었다. 베드로의 생이 머리를 스치는 순간이었다.

성당에서  나오는 길에 다시 피에타 앞에 섰다.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함께 한 마리아가 보였다.  미사를 마칠 때쯤 성모송 '아베 마리아'가 흘러나왔다.

빛으로 오셨다는 예수의 탄생과 죽음을 떠올리며 눈시울이 붉어지던 순간이었다.


나에게 로마는 '빛'으로 기억된다.

성당 안  쿠폴라 돔으로 들어오는 태양빛, 콜로세움 바깥으로 새어 나오던 빛,

포로 로마노의 기둥과 돌들을 위로하듯 비추는 밤의 조명들...

어둠이 있어 빛이 보이던 밤. 어둠과 빛은 홀로 존재할 수 없음을 느꼈던 로마에서의 밤.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창시자 ‘카라바조’가 생각난다. 빛과 어둠의 극명한 대비를 그림으로 표현한 카라바조의 그림을 보면, 아름다운 순간과 누추해지는 과정 모두가 세상의 일부라고 말하는 듯하다.  그는 화려하면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추구했던 로마 교황청과 달리 화려한 장식 없는 단순하고 검은 배경의 그림을 그렸고, 개신교의 청빈함을 그림 속 주인공들의 맨발로 표현하였다.


감각으로 느끼는 여행을 이어가려고 한다.

다음 여행지에서는 무얼 만나게 될까? 그곳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 진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이야기가 듣고 싶어 진다. 이미 오래전 떠나간 이들의 이야기까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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